모든 위대한 천재들은 어째서 사후에 더 이름을 날리는 것일까. 피카소도, 고흐도, 갈릴레이도, 김정호도 그랬다. 평범한 우리가 당대에 그들에게 인색한 것은 천재의 눈에는 보이는 세상, 천재의 귀에는 들리는 세상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천재의 그 뛰어남을 시기하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천재는 운명적으로 당대의 몰이해와 후대의 축복을 받게 되어 있는 것일까.
빈센트 반 고흐. 그는 서른일곱 살에 권총으로 자살했다. 그림 879점과 평생 공감했던 동생 테오 앞으로, 또 그다지 공감할 수 없었던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낸 수백 통의 편지를 남겼다. 그림에 대한 고흐 자신의 생각과 평생 자신을 괴롭힌 가난과 질병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책은 그 편지들을 선별해 묶은 것이다.
고흐는 가난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이전부터 오랫동안 일자리가 없었다. 외모를 가꾸지 않았던 것도, 가족들과 친구들의 배척을 받았던 것도, 대학을 마치지 못했던 것도, 그림이 잘 팔리는 동료를 부러워했던 것도, 사랑했던 동생 테오에게 신경질을 냈던 것도 가난 때문이었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흐는 살아서 쓸모없는 사람이었고, 죽어서 아쉬운 사람이었다. 동생 테오를 빼면 가족도 친척도, 친구들도 그를 배척했다. 생전에 그의 그림은 팔리지 않았고, 팔려도 아주 싼값에 팔렸다. 그는 물감을 아껴야 할 만큼 가난했고, 우편료가 없어 그림을 보내지 못할 만큼 가난했다. 그러나 그의 그림 '해바라기'는 1987년 런던의 경매장에서 3천629만달러에 팔렸다. 이미 고흐가 죽은 뒤였다.
그림에 대한 고흐의 집념은 무시무시했다.
생레미 요양원에 갇힌 그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발작이 일어난 후 다음 발작까지 유지되는 안정기를 놓치고 싶지 않다. 그 사이 다른 의사를 만나고 싶다. 정신병원에 계속 갇혀 지내야 한다면 환자들이 들판이나 작업장에서 일할 수 있는 병원에 가고 싶다. 그런 곳이라야 그림 소재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다'고 절규했다.
고흐는 권총으로 자살했다. 동생의 품에 안긴 채 "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서른일곱이었다. 너무 빨랐지만 그의 죽음은 선택이었고, 유일한 탈출구처럼 보인다.
'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
세상에 이 말만큼 고통스럽고 절박한 말이 또 있을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슬픔도, 고통도, 약간의 기쁨도, 어쩌면 비칠지 모를 엷은 서광도, 나와 관련한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라도 모조리 다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처럼 절박한 말이 또 있을까.
자살하는 사람들에 대한 세상의 시선은 차갑다.
'자살할 용기가 있으면 뭐든 할 수 있겠다'는 말은 사실, 행인의 객관일 뿐이다.
객관은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주관을 결코 이기지 못한다. 주관은 정답이 되기 어렵지만, 인생의 답안지를 채우는 쪽은 언제나 주관에 입각한 개인이다. 자살은 지극히 주관적인 행위다. 그 주관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은 언제나 객관적인 평가일 뿐이다. 객관과 주관은 멀다. 312쪽, 9천800원.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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