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적에 방학은 마냥 노는 것이었다. 어김없이 방학숙제라는 것이 있었지만, 그건 숙제가 아니라 노는 아이 방학을 정당화하는 면죄부 같은 것이었다. 방학이 끝나기 전 사나흘 동안 후딱 해치우는 통과의례였다. 물론 밀린 일기를 한꺼번에 쓰느라 힘들었던 기억도 있다. 언제 한 번은 방학 내내 밀린 일기를 한꺼번에 몰아 쓰다가, 너무 힘이 들어 중간 중간에 "어제와 같다"를 반복했다가 담임선생님께 혼난 적도 있다. 가끔은 방학 중 생활계획표라는 것을 만들어서 책상 앞에 붙여두기도 했지만, 사나흘 지나면 거의 잊어버리고 노는 것이 방학이었다.
방학(放學)이란 말 그대로 학교공부를 쉬는 것이다. 평소 학교에서 하던 공부를 놓아야 방학이다. 방학이 아주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에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우선은 날씨가 아이들이 학교에 오가면서 공부하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한동안 학교공부를 쉬자고 방학을 한다. 그러나 방학이 단지 날씨나 학교에 오가기 어려운 사정 때문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방학은 동양화의 여백만큼이나 중요하다. 비어 있지만 의미심장하다. 마치 대나무가 틈틈이 성장을 멈추고 마디를 맺는 것처럼, 방학은 아이들을 영글게 한다. 방학은 쉽게 지루해질 수 있는 아이들의 일상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는 휴식이다.
이전의 방학은 무엇보다도 평소에는 할 수 없었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다. 시간에 맞추어 등하교해야 하는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자체가 홀가분하고 매력적이었다. 아침을 먹자마자 강가에 나가서 저녁 늦도록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도 있고, 학기 중에는 갈 수 없었던 외가나 친척집에 가서 한동안 머물 수도 있었다. 시간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공간의 속박이 느슨해지는 만큼 재미도 있었고 기다려지는 것이 방학이었다.
아이든 어른이든 재미있는 일을 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요가의 인간이해에 따르면, 사람의 가장 내밀한 층은 환희로 이루어져 있으며, 환희로 이루어진 층은 재미있는 일과 통한다. 환희로 이루어진 층이 정화되어야 비로소 사람다워지며, 사람다워지는 공부의 특징은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환희로 이루어진 층 바깥에는 식(識)으로 이루어진 층과 의근(意根)으로 이루어진 층이 있으며, 그 바깥에는 생기(生氣)로 이루어진 층과 물질로 이루어진 층이 차례로 있다. 학교공부는 주로 식으로 이루어진 층과 의근으로 이루어진 층을 닦기 위한 것이다. 이에 비하여 방학 중에는 환희로 이루어진 층이 정화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 재미있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다워지는 공부라는 점에서 보면, 방학은 오히려 학교공부보다 더 본질적이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방학은 차츰 학교공부의 연장으로 변질되었다. 고학년이 될수록, 대학입시에 가까운 학년이 될수록 방학의 변질은 더욱 심각하다. 고3 아이들에게 방학이 보충학습기간으로 변질된 것은 이미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복습이다, 선행학습이다 해서 방학은 온통 더 지독한 학교공부의 연장이 되었다. 우울한 변질이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학원으로 독서실로 뛰어 다녀야 하는 것이 요즘 아이들의 방학이다. 그것은 방학이 아니라 차라리 심화학습기간이라 해야 한다. 아이들도 방학을 기다리는 것 같지 않다. 이전에는 이미 7월 초순부터 손꼽아 기다리던 것이 여름방학이었지만, 요즘 아이들은 방학을 기다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방학을 하고 나서도 별로 재미가 없는 것 같다. 방학이 심화학습기간으로 변한 것은 실로 이 시대의 우울이다.
삶은 일상과 일탈, 익숙함과 처음을 두 극으로 하는 타원형이다. 한 극에서 다른 한 극으로 옮겨가며 삶은 그 의미를 유지한다. 한 극에 머물러 있는 한 가슴 떨리는 삶은 없다. 일탈 없는 일상은 무덤덤하다. 처음은 익숙함으로부터의 일탈이며, 자유는 일탈에 있다. 아이들의 삶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아이들의 삶은 학교공부와 방학을 두 중심으로 하는 타원형이다. 학교공부에서 방학으로, 방학에서 학교공부로 옮겨가는 것은 아이들의 삶이 그 의미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학기 중에 열심히 공부하는 기간이 필요한 것처럼, 학업이라는 일상으로부터 일탈하는 방학도 필요하다. 열심히 공부하라고 다그치는 것도 필요하지만, 또한 아이들의 '게으를 수 있는 자유'도 인정되어야 한다. 이미 여름방학도 절반이나 훌쩍 지나가버렸다. 아이들에게 학교공부로부터 훌쩍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래야 학교공부의 의미가 살아난다.
이거룡(선문대교수·요가학교 리아슈람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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