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뭘 어쩌자는 겁니까?'
최근 회고록을 출간했다는 노태우 전 대통령께 던져보는 물음이다.
전'현직 대통령들의 회고록이나 저서는 이미 여러 권이 나와 있다. 저마다 나름대로의 개인사(史)와 청와대 안에 머물 동안의 이런저런 비사(秘史) 등을 쓰고 있다. 글이란 게 소설가나 시인들만이 쓰는 전유물도 아니고 누가 언제 어디서 무슨 책을 써내든 글쓴이의 권리고 자유다. 회고록이든 개인 시집이든 싫으면 안 읽으면 그만이지 왜 이딴 걸 썼느냐, 그것도 이야기라고 썼느냐 할 것도 없다. 반면에 그런 책을 뭣 하러 썼을까 라고 고개를 갸우뚱한다고 해서 글쓴이가 시비 걸 것도 없다. 퇴임 대통령의 회고록을 두고서 '그래서 지금 뭘 어쩌자는 겁니까?'라고 물어본 것 역시 그저 국민의 한 사람(독자)로서 갖는 의문이고 권리며 자유란 얘기부터 해둔다.
대통령 정도 되는 지도자의 회고록은 우선 그 회고록을 쓴 목적의 순수함이 존경받을 수 있어야 하고 그 내용의 공개가 국민에게 감동과 공감을 끌어내고 후진 정치인에겐 본보기가 되며 정부와 외교적 국익에는 보탬이 돼야 한다. 행여 인세(印稅) 같은 돈벌이 목적 같은 것이 숨겨져 있다면 그 순간 회고록의 빛은 바랜다. 이번 회고록은 그런 경우가 아니겠지만 통상 대통령의 회고록이나 비화 공개는 보통사람의 회고록보다는 빅 세일이 될 수도 있기에 조심스러워야 한다. 전직 대통령이란 직함이 갖는 프리미엄이 붙기 때문이다.
미국 트루먼 전 대통령의 일화는 그런 지도자의 신중한 처신을 돌아보게 한다. 그는 퇴임 후 어렵게 살면서도 대기업이 엄청난 연봉을 제안했을 때 "당신들이 바라는 건 내가 아니고 미국 대통령직(職)일 텐데 그것(직)은 내게 속한 것이 아니라 미국 국민에게 속한 것으로 판매품이 아니오"라며 거절했다. 퇴임 후 직(職)을 내건 일로는 어떤 수익이나 혜택도 거부한 셈이다. 물론 회고록을 내지도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의 회고록 '정치자금과 나'의 내용을 추려보자. 'YS가 대선 선거자금 지원요청을 해와 3천억 원을 주고 상공부 장관 등에게 지시해서 한꺼번에 1천억 원을 보내준 일도 있다.' '정치자금은 대기업들로부터 받아 충당했다.' 그리고 선거 끝나고도 큰돈을 계속 혼자 갖고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YS 대통령 당선자가 청와대로 오지 않아 자금을 전해 줄 수가 없어서 그랬다.'고 했다. 찾아왔으면 넘겨줬을 텐데 안 와서 계속 갖고 있다가 감옥 갔다는 이상한 얘기가 된다. 궁색한 논리다. 퇴임 직전 청와대 금고에 100억 원을 넣어두고 나왔다고도 했다.
YS 측의 후속 회고록이 엇갈리게 나온다면 진실 게임이 재연된다. DJ에게 줬다던 20억+α에 대해서는 끝내 침묵했다. 왜 침묵했을까. YS세력은 끝났고 DJ 배후세력은 아직 민주당, 민노당이란 이름으로 버티고 있어 그 힘이 두려워서일까. 글 쓴 사람만이 알 일이다. 6'29선언은 '전두환은 망설였고 자신이 결단했다.'고 했다. 6'29선언이란 게 과연 거창한 결심이었던가. 그 당시로선 이미 군사정권을 두 번 허용해 줄 국민들이 아니었고 직선개헌 시위는 하늘을 찔렀다. 결단 안 하다가는 가는 수가 있었을 분위기였다. 당연히 선택해야 할 일이었고 결단 않고는 버틸 수 없었던 거센 민주화 열기가 있었다. 그런 걸 친구끼리 내가 했느니 너는 망설였다느니 '대단한 결단'처럼 회고하고 있다.
감동과 공감을 주기엔 설득력이 떨어진다. 전두환 전 대통령까지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 문제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돼버렸다. 결단을 망설인 우유부단한 남자는 내가 아니고 저쪽이었다고 쓰게 되면 둘 중 한 사람은 거짓 회고록을 쓰는 게 된다. 정작 의심 가는 DJ+α 비자금은 언급도 없는 반쪽 진실 회고, 기업인 호주머니서 3천억 원이나 꺼낸 권력형 부조리, 안 했다간 국물도 없었던 6'29선언 자랑. 그런 나라 망신스런 얘기를 20여 년이 지난 지금 온 나라가 힘겨울 때 새삼 회고록까지 써가며 재탕해내서 지친 국민들에게 뭘 보여주고 무슨 감동을 주며 뭘 본받으란 거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패로 감옥 간 전직 대통령이 뭘 쓰든 알 바 없다. 읽고 안 읽고도 국민 마음, 그러나 뒤이어 나올 이런저런 '국민을 피곤하게 하는' 저들만의 회고록들을 경계하자는 뜻에서 예(禮)를 거슬러서라도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지금 뭘 어쩌자는 겁니까?'
-회고록은 그럴망정 자연인으로서의 노(老)정객의 쾌유는 진심으로 빈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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