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야간 통행금지

야간 통행금지의 역사는 오래됐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가 목적이지만 거꾸로는 국가가 국민을 쉽게 통제하는 방법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초부터 있었다. 경국대전과 조선왕조실록에는 15세기 초인 태종 때부터 기록이 남아 있다. 날이 어두워지면 당연히 일상생활에 제약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통행금지 시간도 오후 8시, 혹은 10시쯤부터 오전 3, 4시까지였다. 이는 조선 말까지 이어졌는데 이를 어기면 곧바로 감금하고, 어긴 시간대별로 나누어 곤장을 때렸다. 밤이 깊을수록 처벌이 강했고, 통금 시작과 해제 시간에 가까우면 다소 약했다.

야간 통행금지는 고종 때인 1895년에 전면 폐지됐다가 미군정 때인 1945년 9월 8일 부활했다. 처음에는 경성과 인천에만 밤 8시부터 새벽 5시까지 제한했지만, 9월 말에는 '미국 육군이 점령한 조선지역 내 인민' 에게 밤 10시부터 오전 4시까지 야간통행을 금지했다. 이 말은 남한의 조선 사람에 대해서만 제한하는 것이니 점령지 국민으로서의 아픔을 톡톡히 겪은 셈이다. 이승만 정권은 미 군정의 이 제도를 그대로 답습했다. 1954년 경범죄 처벌법을 만들면서 야간 통행금지 위반을 법으로 제재해 벌금이나 구류를 처분했다. 빼앗긴 밤을 돌려받은 것은 그로부터 28년이 지난 82년 1월부터다.

미국 필라델피아 시 정부가 지난 12일 밤부터 청소년에 대해 야간 통행금지를 시행했다. 13세 이하는 주말 오후 10시부터, 18세 이하는 자정부터 시내 일부 중심가의 통행을 금지한 것이다. 이는 지난 6월 이후 청소년들이 중심가에서 집단으로 몰려다니며 행인을 폭행하거나 도둑질을 하는 일이 많이 일어나자 결단을 내린 것이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필라델피아 데일리 뉴스 등 지역 언론들은 통행금지 첫날 50명의 청소년을 적발했다며 이 소식을 주요 뉴스로 전하고 있다.

미국은 늘 국민의 자유를 최우선 가치로 존중하는 국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탈이나 방임에 대해서는 그 어느 나라보다 엄격하게 제재한다. 시장이나 주 지사가 가벼운 법규 위반으로도 경찰에 연행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이는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자유를 더 중요시하고, 공동체의 자유가 곧 개인의 자유를 더욱 폭넓게 보장한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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