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신라의 부활

"1천 년 전 신라시대로 돌아가면 어떨까?" 얼마 전 술자리에서 나온 얘기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면 최근 지역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대구'경북의 통합 문제를 안주 삼아 얘기하던 중 지역 한 대학의 A교수가 내뱉은 말이다. A교수는 최근 일본의 오사카시의 상황에 빗대 대구'경북 통합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오사카는 일본의 수도인 도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일본 최대의 상업도시다. 재일교포가 많이 살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지만 도쿄와는 역사적으로 강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는 동네다. 하지만 요즘 이런 라이벌 구도가 조금씩 깨지고 있다고 A교수는 전했다. 최근 오사카의 위상이 추락하면서 일본 '제2의 도시'라는 타이틀을 요코하마에 내줬다는 것이다.

A교수는 이를 두고 수도권의 '힘'이라고 풀이했다. 도쿄만에 자리한 요코하마시는 도쿄에서 기차로 불과 3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과 인천의 관계다. 인천이 서울이라는 든든한 백그라운드와 전체 인구의 절반이 사는 수도권이라는 거대 시장에 힘입어 얼마 전 대구를 넘어서더니 지금은 부산마저 위협하듯 일본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A교수는 요코하마가 수도권이라는 온실 속에서 나름 경쟁력을 키운 것이 제2의 도시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계기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A교수의 열변을 잠자코 듣고 있던 지역 한 제조업체 B사장이 갑자기 맞장구를 쳤다. 중국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금까지 중국은 행정수도인 베이징과 경제수도인 상하이가 쌍벽을 이루며 서로 힘을 겨뤘지만 요즘엔 경제마저 점점 수도권으로 쏠리고 있단다. 그 중심에는 톈진이 있다. 2008년 고속철도가 베이징과 톈진을 연결하면서 평소 1시간 30분가량 걸리던 두 도시가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로 가까워지면서부터다. 베이징과 톈진에서 도로, 철도, 지하철 개통이 러시를 이루면서 중국 수도권 경쟁력이 '용에 날개를 달았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B사장은 전했다.

사업차 중국에 드나들 일이 많은 B사장은 요즘 톈진의 매일매일 급성장하는 모습이 남다르다고 했다. 톈진 항구와 신흥공업 단지, 그리고 중국 정부가 집중 육성하고 있는 금융 산업 등이 가파른 성장세를 타고 있단다. 여기에 베이징 인근이라는 수도권 프리미엄은 톈진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발길을 잡는 또 다른 원동력이다.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서 대구가 처한 상황이 오버랩됐다. 생산도 전국 꼴찌요, 소비도 7대 도시 중 최하위인데다 인구는 수십 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대구. 제3의 도시라는 허울 좋은 명칭은 이미 빼앗긴 지 오래고, 경제 지표만으로 따진다면 광역시 중 광주와 꼴찌를 다투는 형편이 아닌가. 이웃 나라의 얘기를 남의 일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이날 술자리에서 우리는 충청'강원권까지 갈수록 비대해지고 있는 수도권에 맞서려면 소외된 지역들끼리 뭉쳐야 산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구'경북의 통합만으로도 힘들다. 얼마 전 매일신문 정치아카데미 초청강사로 대구를 찾은 김두관 경남지사가 한 말처럼 대구, 경북, 부산, 울산, 경남 등 영남권 5개 자치단체가 힘을 합쳐서 수도권과 선의의 경쟁을 벌여나가야 한다.

이들 5개 단체가 한 뿌리가 아니어서 통합이 현실상 힘들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1천 년 전엔 신라라는 한 국가로 뭉쳐 있던 동네가 아닌가. 산소 호흡기에 의지할 정도로 위독한 지경인 고향을 정치적인 잣대만 들이대며 그냥 둬서야 되겠는가. 술자리를 파할 때쯤 A교수의 술 취한 목소리가 침대에 누워서도 짙은 여운을 남겼다. "솔직한 심정으론 신라도 약해. 영'호남이 손을 잡는 통일신라는 어때."

사회1부(정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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