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체호프의 '해변의 여인'

어제까지로 올여름 휴가는 대충 마무리된 듯하다. 계속된 물난리에 물가는 폭등, 주가는 폭락하면서 어느 해보다 어수선한 여름이었다. 그렇게 빗속의 여인에 밀려서인지 올해는 해변의 여인이 더 가뭇한 풍경이 되고 말았다.

'해변에 새로운 얼굴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었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이렇게 시작된다. 휴양지의 해변, 마흔 가까운 유부남 은행원의 불륜. 이렇게만 보면 푸슈킨상 수상 등 이미 작가로서 남부럽지 않은 명성을 누리던 체호프의 후기작으로는 너무 실망스런 수준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 작품이 그가 1898년 여배우 올가 크니페르와 사랑에 빠지면서 쓰게 된 '자신의 이야기'라고도 하지만, 사랑에 관해서라면 몰라도, 두 사람 모두 미혼으로 만나 1901년 결혼에 이르렀으니 적어도 '중년의 불륜'은 체호프와는 무관한 일이다.

모스크바 출신의 은행원 구로프는 세상에 밝은 속물이며 전형적인 바람둥이다. 여자를 '저급한 인종'이라고 말하지만 그 '저급한 인종' 없이는 이틀을 버티지 못한다. 그에게는 자칭 인텔리인 아내와 세 아이가 있다. 그런 그가 휴양지에 혼자 와 2주를 어슬렁거린다. 22세의 젊은 유부녀 안나도 혼자 그곳에 와선 개를 데리고 늘 '산보'라는 걸 한다. 구로프의 뻔한 수작과 안나의 응대, 그렇게 휴양지에서의 짧은 연애가 끝나고 그들에게도 예정된 이별이 찾아온다. 그리고 구로프는 이전의 많은 여자들처럼 그녀도 곧 잊힐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에 대한 모든 기억들은 점점 또렷해지면서 그를 괴롭힌다. 평화롭던 그의 예전 일상은 야만이 되고 무의미가 되어 버린다. 그래도 중년의 건실한(?) 은행원은 12월 휴가 때까지 꾹꾹 참고 있다가 아내에게는 그럴듯한 알리바이까지 둘러댄 연후에야 그녀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재회 이후 그들의 불륜은 점차 일상적인 색채를 띠게 된다. 그녀는 진찰을 핑계대고 두세 달에 한 번꼴로 모스크바에 와 은밀히 그를 만나고, 구로프 또한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에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겨울에는 어째서 번개가 치지 않는지 따위를 천연덕스럽게 설명해주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머리가 희어진 무렵에야 비로소 처음으로 사랑을 알게 된 구로프와 그 사랑의 험난한 시작을 알리는 것으로 끝난다. '두 사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일은 지금 막 시작되었을 뿐이라는 것을.'

도대체 무엇이 시작되었다는 말인가? 도덕적이나 죽어있는 삶(결혼) 대신 부도덕하나 생기있는 삶(불륜)을 택했던 톨스토이의 안나는 죽음으로 단죄되었다. 체호프의 안나는 사랑을 앞세워 부도덕을 넘어서고자 하는 것일까? 우리가 분명하게 답할 수 있는 것은 구로프가 그 사랑을 통해 처음으로 내면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꿈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부도덕이라 비난한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삶'을 가능케 하는 생의 결정적 계기로 사랑만한 것이 없으리라는 점에는 흔쾌히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3월 대지진 이후 일본에서는 이혼하는 부부들이 급증하면서 '이혼식'도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결혼생활의 죽음을 뜻하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부부가 친지들을 모아놓고 식사를 한 뒤 망치로 결혼반지를 부수는 것으로 끝나는 이혼식은 부부가 다시 싱글이 되는 것을 기념하고 행복한 새출발을 서로 축하해주자는 취지로 고안된 것이라고 한다.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최근 우리 드라마에도 행복한 새출발을 다짐하는 의식으로 망치를 들고 결혼반지를 부수는 이혼녀가 등장했다. 일본의 경우 대지진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삶에 있어 우선순위를 재정립하게 되었고 몇몇에게는 그것이 새출발로서 이혼을 결심하는 동인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혼 자체가 곧 '행복'한 새출발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행복을 '탁월성에 따른 영혼의 어떤 활동'이라고 정의한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행복은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어떤 '상태'가 아니라 능동적인 주체의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여름휴가도 끝나고 체호프의 이야기도 끝이 났지만 막 시작되는 우리의 이야기가 '행복'이 되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열려라 참깨!' 따위의 주문외기가 아님은 자명한 일일 것이다.

김계희(변호사)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