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희망

그리스 신화가 들려주는 '판도라의 상자'는 희망을 말하고 있다. 신들의 제왕 제우스가 선물로 준 상자를 열자 탐욕과 질투 시기심은 평화로운 세상 밖으로 빠져나갔고 상자에는 희망만이 남았다는 신화 속 이야기는 세상이 아무리 험악해도 한줄기 희망은 남아 있다는 메시지를 준다. 희망을 말하는 이야기는 동서를 막론하고 많다. 그만큼 삶에 힘들고 지친 사람들이 많다는 역설이기도 하다.

희망이란 말의 쓰임이 부쩍 잦아졌다. 그러나 요즘 회자되는 희망의 말은 무지갯빛 이야기를 하는 대신 희망이 사라지고, 희망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아무것도 가질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시위와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 신사의 나라 영국에서는 멀쩡한 젊은이들이 노략질에 나섰다. 아프리카 가난한 나라 아이들의 사진은 여전히 절망의 휑한 눈망울을 보여준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은 하면 된다는 시대의 화두였다. 놀고먹는 게 나쁘지 무슨 일을 하든 다 하늘이 준 신성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면 된다는 말이 해도 안 된다는 말로 바뀌면서 직업은 귀천이 없다는 말도 공허한 소리가 됐다. 일 자체야 소중하지 않은 게 어디 있겠냐만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이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이는 드물다. 하루종일 뼈 빠지게 일해도 고작 100만 원도 벌기 힘든 사람들이 수십억 원을 버는 직업과 자신의 일을 동등하게 여길 리는 만무하다.

무상급식 문제를 놓고 서울에서는 곧 주민투표를 한다. 공짜 점심을 주느냐 마느냐를 묻는 투표인데 정작 공짜 점심을 먹어야 할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인 양 말도 못하고 숨죽이고 있다. 경쟁에서 밀려난 처지도 서럽지만 포퓰리즘이니 뭐니 하는 논쟁에 끼어들 자신이 없다. 나라가 부자가 되면 가난도 벗어날 것이라고 믿어 온 게 틀렸다는 사실에 주눅이 들고, 좌절과 절망은 분노를 부른다.

희망이 있고 없음은 돈의 많고 적음과 무관한 일이라고 한다. 부자라고 고민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가난하다고 모두 절망 속에 사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사회가 갈 곳은 뻔하다. 희망을 전달하지 못하는 정치는 소용이 없다. 하면 된다는 이제 영영 남의 나라 이야기인가.

서영관 논설주간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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