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만주 신흥무관학교 '최후의 1인'을 아십니까

항일유적지탐방단, 권기일 선생 순국 91주년 추모제

합니하 강변 신흥무관학교 옛터에서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의 만주 항일유적지탐방단원들이
합니하 강변 신흥무관학교 옛터에서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의 만주 항일유적지탐방단원들이 '최후의 일각'까지 신흥무관학교를 사수하다 순국한 추산 권기일 선생의 순국 90주기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

"신흥무관학교를 마지막까지 사수하던 독립운동가를 아십니까?

1910년 경술국치 이후 항일투쟁 100주년을 맞아 올해 안동독립운동기념관 만주 항일유적지탐방단원들은 16일 오전 만주 지린성(吉林省) 통화시(通化市) 광하진 합니하 강변 옛 신흥무관학교 터를 찾아 홀로 학교를 사수하다 '최후의 1인'이 된 추산(秋山) 권기일(權奇鎰'1886~1920) 선생의 순국 91주년 추모제를 지냈다. 1920년 8월 15일 추산 선생은 이곳을 기습한 일군 수색대를 맞닥뜨려 격렬하게 항거하다 학교 근처 옥수수밭에서 포위돼 일군의 총검에 수십 군데를 난자당하면서도 끝까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순국했다.

이날 비가 내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산을 받쳐 든 채 이곳을 찾은 항일유적지탐방단원들은 그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가슴속 깊이 새기며 추모제를 열었다.

탐방단원들은 그의 후손인 손자 권대용 씨와 함께 처음 그린 그의 초상화와 최근 발행된 '순국지사 권기일과 후손의 고난'(저자 김희곤 안동대교수)이라는 추산 일대기를 그린 책을 태극기에 깔아 둔 영전에 바쳤다. 추산 선생은 1911년 당시 안동과 울진, 영덕 등 경북지역 사람들이 집단으로 이주해 독립의 꿈을 키우던 서간도 유하현 삼원포 추가가 마을에서 한해와 수해로 흉년이 들고 전염병까지 돌면서 당시 석주 이상룡 선생이 이끄는 독립운동이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자, 3천 섬이나 되던 안동 권씨 대애실 문중(안동시 남후면) 전 재산을 처분해 1912년 봄 가족들과 함께 급히 만주로 향했다.

만주에 도착하자마자 어려움에 처한 독립운동의 어려움 타개에 나섰으며 석주 이상룡 선생 등 안동지역 사람들과 함께 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추산 선생은 항일단체인 한족회 교육위원으로 활동하며 항일운동을 펼쳤다. 후손들에 의하면 추산은 석주 이상룡 선생 아래에서 일경의 밀정 색출과 군자금 획득 등 은밀하면서도 중요한 임무도 수행했다. 열혈 애국청년이었던 추산은 34세 때 청산리 전투와 봉오동 전투에서 참패한 보복으로 간도 조선인 학살에 나선 일본군에 무참히 살해당했고, 그의 유골이 어디에 묻혔는지는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간도지역 독립군의 산실이었던 신흥무관학교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지 못한 상황이라 이날 애써 이곳을 찾은 탐방단원들은 무성하게 자란 옥수수밭만 바라보며 우리 정부의 무관심에 한숨짓기도 했다. 학계에서는 합니하 강 주변 3군데를 놓고 신흥무관학교 옛터라고 각각 주장하고 있는 형편이다.

항일투쟁 당시 단동시내에서 국내와 만주지역 독립지사들의 활동을 연결해 주는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 '이륭양행'도 중국의 개발바람에 밀려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이제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돼 아쉬웠다. 김희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장은 "하루 빨리 중국 동북3성에 산재한 우리 선조들의 항일유적지에 대해 표지석이라도 세울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며 "매년 만주지역에 올 때마다 하나씩 사라지고 있는 항일유적지가 너무나 안타깝다"고 했다. 지린성 통화시에서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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