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아저씨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내 친구 철이는 저보다 공부를 더 잘한답니다. 축구공도 더 멀리 차고 코도 더 잘생겼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와 삼촌이랑 좀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급식비를 안 내고 학교 점심을 먹습니다. 우리 반 친구들이 다 알거든요. 그런데도 '난 기술을 배워서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이 될 거야'라며 언제나 명랑하고 씩씩하답니다.

그런데 내일모레(24일) 우리 아이들 무상급식 방식을 놓고 어른들이 무슨 투표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서울시장 아저씨는 다 같이 무상으로 밥을 주되 나라 살림 형편 봐가며 계획에 맞춰 주자고 하고, 반대하는 아저씨들은 저 같은 부잣집 아이들까지 한꺼번에 다 주자고 맞서는 바람에 어느 쪽으로 할 것인지 투표로 결정한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엔 내 친구랑 우리 급식을 위해 투표까지 해가며 관심 갖고 애쓰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며칠 전부터 교육감 아저씨가 고발당하고 국회의원 아저씨끼리 싸우기 시작하는 걸 보게 되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아저씨들은 '나쁜 투표, 투표장에 가지 말자!'는 피켓을 들고 있고 같은 날 시장 아저씨는 '국민 투표 꼭 참여!'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고요. 서울 교육감 아저씨는 투표하는 날 서울 시내 교장선생님들을 몽땅 데리고 멀리 가버린다고도 합니다. 그러면 투표를 언제 어떻게 하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울 때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는 꼭 해야 하고 어떤 의견이든 투표장에 가서 찬반 의견을 나타내야지 투표를 안 하면 나쁜 일'이라고 배웠거든요. 그런데 왜 교장선생님들이 투표 날 멀리 단체로 떠나버리시는지 참 이상했답니다.

우리들의 밥 먹는 문제와 자존심 같은 걸 걱정하신다면서 그걸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 게 좋겠느냐는 것을 논의해 보자는 투표를 왜 '나쁜 투표'라고 하는지도 이상하기만 합니다. 838만 7천278명 어른들 중에 3분의 1(33.3%)이 투표하러 가야만 방법이 결정된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진심으로 걱정하셔서 투표장까지 가주시는 어른들이 3분의 1도 안 된다면 철이랑 우리는 참 슬퍼질 것 같아요. 더구나 국민과 나라를 위해 일하시는 분들이라고 배운 국회의원 아저씨들은 33.3%가 넘으면 시장(市長) 아저씨가 이기고 계백 장군처럼 놔두면 당(?)이 지느니 어쩌니 다투는 걸 보았어요.

우리 걱정보다 당(?) 걱정, 선거 걱정부터 먼저 하시는 거잖아요. 어떤 국회의원 아저씨는 '대통령 선거 안 나오고 시장 자리까지 걸면 투표를 도와주겠다'고 하는 걸 신문에서 봤습니다. 시장 아저씨 대통령 출마하는 거 하고 내 친구 밥 굶는 거하고 무슨 상관이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어요.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좋은 방법 찾자는 투표를 '나쁜 투표'라며 투표 못 하게 하고, 급식 문제보다 선거를 더 걱정하는 아저씨들을 보고 내 친구 속마음이 얼마나 더 아플지 생각이라도 해보셨나요. 그렇게 겉과 속이 다른 마음으로 우리 밥 먹는 일에 참견하시려면 차라리 가만히 계세요. 지금처럼 우리 친구들끼리 나눠 먹고 쪼개 먹으며 친하게 지내는 게 더 맘 편할 것 같아요.

내 친구 삼촌이 그랬어요. '눈물과 함께 빵을 먹어보지 않으면 인생의 참맛을 모른다'고. 괴테가 했던 말이래요.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다만 불편한 것일 뿐이라는 말도 해주셨어요. 무상급식 받는 내 친구가 공부도 잘하고 축구도 잘하며 씩씩한 것도 삼촌 말처럼 가난을 이길 수 있게 하는 건 물질의 도움보다 정신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요. 자존심 상처니 뭐니 갖다 붙여가며 병 주고 약 주지 마세요. 아저씨들은 겉으론 우리 걱정하는 척하며 속으로는 선거 싸움 하고 있는 거 맞죠? 더 이상 우리 도시락 놓고 딴짓하지 마세요. 내 친구는 가난해도 괴테의 눈물 묻은 빵처럼 자존심 상하지 않고도 꿈을 가질 수 있어요.

이탈리아 격언에 '희망이야말로 가난한 자의 빵이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공짜 빵보다 희망을 주세요. 내 친구에겐 오늘 당장의 한 조각 빵보다 미래의 희망과 꿈이 더 필요하답니다. 우리들이 바라는 그 희망은 작고 쉬운 거랍니다. 내 친구 어머니가 빨리 정식 직원이 돼 월급이 올라가고 내 친구 대학생 삼촌이 취직 빨리 되게 하는 나라, 무상급식 투표 같은 건 없어도 되는 그런 나라부터 만들어 주세요. 그 꿈을 위해서라도 제발 웃기는 싸움 좀 그만 하세요.

"지금 아저씨들 뭐 하고 있는 거예요?"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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