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린 대구의 피스토리우스·스미스"

의족 러너 우동수 씨…시각장애 마라토너 최원규 씨

"희망 향해 달려요!" 한쪽 다리가 없어도, 앞을 볼 수 없어도 우동수 씨와 최원규 씨는 희망을 향해 마냥 달린다. 성일권기자

시각장애인 단거리 선수 제이슨 스미스(24'아일랜드) 선수와 두 발에 의족을 끼고 달리는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4'남아프리카공화국) 씨는 장애인들의 희망이다. 이들을 보고 힘을 얻는 장애인 육상 선수들이 대구에도 있다. 왼쪽 다리 없이 의족으로 달리는 40대 단거리 선수와, 시력과 왼쪽 청력을 잃은 20대 마라토너가 이들과 함께 '편견의 벽'을 넘고 있다.

◆"피스토리우스는 우리의 희망"

22일 오후 대구 달구벌종합스포츠센터. 체육관을 달리는 우동수(43'지체장애 4급) 씨의 왼쪽 다리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치타라고 불리는 녀석이지요. 이 의족이 없다면 금메달도 없었을 겁니다." 우 씨는 지난해 제30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4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00m 최고 기록은 14초 90. 그는 23살 때 뺑소니 차량에 치여 왼쪽 무릎 밑을 잘라내야만 했다.

절망의 늪에서 헤매던 우 씨는 1998년 육상을 시작하면서 희망을 되찾았다. 예전 기술로는 의족에 탄력이 없어서 뛰기 힘들었지만 1998년 운동할 만큼 탄력이 붙은 '에너지 발'이 나오면서 우 씨의 인생은 달라졌다. 당시 양다리로 걷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살아왔던 그에게 한 의료기기 업체가 "육상을 해보지 않겠냐"고 권했다. "그때 TV에서 외국 선수가 의족을 신고 뛰는 모습을 봤어요. 나랑 똑같은 사람들이 해내는데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혹이 넘은 나이에 시작한 달리기는 삶의 활력이 됐다. 평일에는 재활의료기 판매일을 하고 새벽과 저녁에는 인근 운동장을 뛰었다. 전국대회 출전을 결심한 뒤 800만원이 넘는 경기용 의족도 구입했다. 그렇게 1998년 처음으로 전국체전에 도전했고 2009년에는 100m, 200m, 400m 모두 금메달을 따냈다. 대구에서 유일한 '의족 스프린터'인 우 씨는 올해 10월 경남 진주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에도 출전한다. 그는 인생의 등불이 된 피스토리우스가 이번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를 응원하고 있다. "피스토리우스가 메달을 따지 못해도 괜찮아요. 비장애인 선수와 당당히 겨루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이미 '희망'입니다."

◆"마음의 눈으로 보고 달려요."

최원규(26'시각장애 1급) 씨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다. 왼쪽 청력을 잃고 언어장애까지 얻은 그는 화장실을 갈 때도 주변인의 도움이 있어야만 한다.

그랬던 최 씨가 이제 10㎞를 1시간10분 만에 완주하는 마라토너가 됐다. 그가 뛰기 시작한 것은 2008년. 시각장애인복지관 선생님이 "구청에서 주최하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보자"고 제안한 게 새로운 인생으로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출발부터 녹록지 않았다. 중심을 잃고 넘어지거나 일직선으로 달리지 못해 체육관 벽에 부딪치는 날도 많았다. 그러나 최 씨는 점점 빨라졌다. 2008년 '달서 웃는 얼굴 마라톤대회'에서 1시간30분에 10㎞를 완주한 뒤 지난해 '대구국제마라톤대회'에서는 1시간10분에 10㎞ 구간 결승 테이프를 끊었다.

혼자 이룬 일은 아니다. 달릴 때마다 손을 잡고 함께 뛰어주는 도우미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를 2년째 돕고 있는 조지혜(45'여) 시각장애인 지도 교사는 "잔병치레를 자주 했던 원규가 마라톤을 시작한 뒤 건강해졌고 기억력까지 좋아졌다. 이제는 운동에 재미를 붙여 수영까지 할 정도"라고 환하게 웃었다.

최 씨를 따라 자신처럼 시각장애 1급 장애인인 동생 정제(24) 씨도 마라톤에 빠졌다. 다음달 25일 10㎞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는 최 씨는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 "안 보여도 달릴 수 있어요. 제이슨 스미스 선수처럼 꼭 세계대회에 나가고 싶어요." 그는 오늘도 마음의 눈으로 앞을 보며 달려간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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