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미국은 벌거숭이 임금님

사기꾼에 둘러싸인 임금님이 벌거벗은 채로 옷 입은 양 거리를 돌아다녀도 모두가 입 다물고 있는데 겁 없는 아이가 "야,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진실을 말했다. 그랬더니 난리가 났다. 비슷한 일이 글로벌 경제에서 일어났다. 모두가 미국의 신용등급이 AAA가 아니라 AAAA라고 아부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었다.

'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하고 불로 일어선 자 불로 망한다.'

미국의 역사를 보면 미국은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전쟁비용이 모자라자 유럽으로부터 돈을 빌려 나라를 세운 나라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금융의 탈을 쓰고 빚을 내 빚을 갚는 '폰지사기'로 연명한 나라다. 그런 미국이 지금 빚덩이에 압사할 지경이다. 그러나 아무도 '벌거벗은 미국님'의 하체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눈 가진 사람은 다 아는데도.

지금 세상은 지는 해 미국과, 떠오르는 해 중국의 시대다. 그런데 두 나라의 하는 짓을 보면 아주 재미있다. 서로를 향해 '저기가 망할 것 같다'고 걱정하는 척한다. 미국은 어마어마한 빚을 FRB의 창고 지하실에 묻어버렸고, 중국은 350㎞/h의 과속으로 대형사고를 낸 열차를 땅에 묻어 은폐하려 했다.

대처는 달랐다. 여론이 들끓자 중국은 묻었던 열차를 파내 조사하고, 고속철 열차를 전량 리콜했다. 반면 미국은 여론이 아무리 들끓어도 묻어놓은 치부를 꺼내 치료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오로지 부채를 더 찍어내면서 '언 발에 오줌 누기'식으로 넘어가려 하고 있다.

금융과 기술은 세상을 움직이는 양대 축이다. 전쟁이든, 국가 운영이든 금융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금융대국이 강대국이다. 금융이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 그러나 금융은 천의 색깔을 가진,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카멜레온이다. 온도가 조금만 바뀌면 돌변한다. 소비가 미덕인 미국에서 더 이상 금융이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제로금리에도 돈 빌리는 사람이 없다는 건 '소비의 종결'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최고와 손잡고 최고를 만들면 대박이다. 한국의 과거 50년이 그랬다. 최고였던 미국과 손잡고 세계 1등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린 것이 반도체, 액정, 핸드폰, 자동차 등의 주력산업을 세계정상으로 올린 비결이다. 그런데 미국이 시들고 있다. 그러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성장동력은 신시장일 수도 있고 신기술일 수도 있다. 손쉬운 것은 신시장을 찾는 것이고, 상대적으로 어려운 것은 세상에 없던 기술을 만드는 것이다. 적어도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첨단 정보기술의 메카 미국이 반도체와 PC통신 하드웨어 사업을 포기하고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돌아서고 있다. 우리도 선택해야 한다. 미국과 계속 손잡고 소프트산업으로 다시 죽어라 달려 성공 신화를 만들지, 아니면 굴뚝의 나라 중국과 손잡고 소프트웨어 회사가 필요한 하드웨어를 맛깔 나게 만들어 내든지. 그렇게 해서 하드웨어로 소프트웨어를 잡아 버리든지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하드웨어를 제대로 안 하고 소프트웨어로 들어가면 실패한다. 그리고 소프트웨어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창의성의 산물이다. 그래서 소프트웨어는 전 세계 인종의 백화점인 미국에서나 가능하다. 단일 민족에 머리 깎고, 교복 입고, 살인적인 대학입시를 치르는 한국에서 어려운 일이다. 곡선의 창의성과 직선의 효율성은 다르기 때문이다.

긴 역사로 보면 강대국은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지는 나팔꽃 같은 것이다. 지금 중국에 대해서는 폄하와 리스크만이 강조되는데 이는 기득권을 잃기 싫은 미국을 포함한 서방세계가 오도하는 것이다. 자기의 불편한 진실은 눈감고 남의 약점을 침소봉대해 위기라고 떠들어 대는 것이 지금 서방세계 중국 전문가들이다.

세계 시장에서 중국의 파이는 계속 커지고, 파이가 커지면 중국의 리스크는 줄어들고 서방의 리스크는 더 커진다. 하여간 정답은 10년 내에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의 추세를 보면 서방의 중국에 대한 예측은 틀릴 가능성이 높고 오히려 중국에 대한 서방의 시나리오가 서방세계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신용위기 시대에는 빚을 줄이는 작은 정부가 살아남는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말에서 내리는 순간, 창피함에 흔적 없이 스스로 사라진다. 미국과 유럽경제의 붕괴로 빚이 적은 아시아 국채와 자산에 돈이 몰리고 있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지만 돈은 금리, 성장성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른다. 돈은 1%대의 성장과 제로금리의 나라에서 도망 나와 아시아로 오고 있다. 이번 미국의 신용위기를 계기로 벌거벗은 임금님에 대한 우리의 전략을 확실하게 해야 할 때가 오고 있는 것 같다.

전병서(경희대 중국경영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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