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힘들다고 말하지만 가족만 생각하면 일하다가도 웃음이 납니다." 40대를 바라보는 주부 강모 씨는 남편과 맞벌이를 한다. 일 때문에 새벽까지 뜬눈으로 지새우거나 끼니를 거르며 작업에 몰두할 때도 있다. 몸은 고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강 씨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이제 갓 초등학교 들어간 아이들의 얼굴만 떠올리면 그저 행복하다.
◆건강한 장수의 비결은 가족
강 씨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삶에 대한 많은 연구에서도 '가족'은 사람을 행복감에 젖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었다. 이들 연구에서 대부분 사람들은 행복한 삶의 조건으로 '건강한 삶과 긴 수명'을 꼽았다.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가족'이 으뜸이었다. 영국에서 주부 4만 명을 대상으로 '행복한 삶'을 조사했더니 부모와 자식이 일주일에 세 번은 함께 식사를 해야 한다고 답했다. 자녀가 없다면 배우자와의 관계가 행복감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구체적인 횟수나 기간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배우자나 자녀와의 관계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 평균수명이 늘면서 노후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현 세태와는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50대에 이르면 행복을 실감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아이 양육이 끝나면서 스트레스와 걱정거리가 준다는 것. 다만 여성은 연령대에 상관없이 남성보다 이런 걱정이 많았다.
가족과 친구 등 주위 사람들과의 긴밀한 관계는 100세 장수의 비결 중 하나로도 꼽혔다. 지난해 호주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즈대의 로빈 리치몬드 교수는 100세 이상 노인 188명을 대상으로 장수의 비결을 연구해 이런 결과를 발표했다.
장수 노인들은 사교적, 개방적, 긍정적이었다. 연구진은 "특히 장수 노인들은 가족 및 친구와의 교류를 매우 중시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부정적 생각에 빠지거나 다른 사람을 적대시하지 않으며, 쉽게 화를 내거나 우울해하지도 않았다.
◆행복은 유전이 아니라 가족이 결정
행복은 미리 결정된 것일까? 유전자에 의해 삶의 행복도가 예정돼 있다는 이론이 바로 '셋포인트 이론'(set-point theory)이다. 일란성 쌍둥이의 삶을 살펴봤더니 만족도(행복)가 비슷하게 움직인다는 연구 결과에서 비롯된 것. 이 때문에 사람마다 여러 사건이 생기면서 행복도가 들쭉날쭉하지만 2년쯤 지나면 유전자에 의해 정해진 행복도로 돌아온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호주 멜버른대 브루스 헤디 교수팀은 '그렇지 않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행복도가 유전적으로 정해져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25년간 6만 명을 대상으로 직업, 생활습관, 사회'종교적 활동과 삶의 만족도 등을 조사했다.
행복지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들은 ▷배우자 ▷가족 ▷타인을 아끼는 마음 ▷종교 활동 ▷체중 등이었다. 배우자가 신경질적이면 행복해지기 어려웠고, 둘의 관계가 지속되는 시간만큼 불행하게 느꼈다. 한편 남을 아끼고 배려하는 행동을 자주 하는 사람은 행복도 꾸준히 높았다. 그러나 물질적 성공이나 자기 직업만 우선시하면 행복 지속시간이 훨씬 짧았다.
가족만 있다면 돈이 없어도 행복할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돈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열쇠다. 다만 돈이 많은 것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았다. 2008년 영국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20년 전보다 2배나 풍족하고 건강하다고 답했지만 결코 행복해졌다고 인정하지는 않았다. 몸이 아픈 가족의 진료비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 큰 부담없이 가족여행을 떠날 수 있을 정도, 비록 사사로운 관계가 없더라도 어려운 이웃을 조금이나마 도울 정도의 부유함이 행복의 금전적 기준이었다.
눈을 쳐다보면서 대화하면 가족 구성원이 행복한지 알 수 있다. 행복한 사람일수록 상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눈길을 회피한다는 것. 자녀나 배우자가 눈길을 마주치지 않고 외면한다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봐도 될 것. 문제는 눈길을 피할수록 고립감과 불행감이 더 커지는 만큼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적극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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