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의 혼] 제5부-소통과 변화의 수용 <1>혁신과 선각의 중심, 경북

"석굴암 불상은 경상도 남녀 얼굴을 닮았다" 그들은 온화하고 열린 정

신라인들이 모델이 된 불상은 오늘날 경상도의 남녀얼굴을 닮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신라 천년의 미소로 불리는 얼굴 무늬 수막새의 미소 (가운데)와 설국암 부처의 온화한 미소, 경주 남산의 신라 보리사 추정의 미륵곡 석조여래좌상(왼쪽) 불상 및 할매 부처(오른쪽)로 통하는 남사 불곡 마애여래좌상의 표정들. 이채근기자
신라인들이 모델이 된 불상은 오늘날 경상도의 남녀얼굴을 닮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신라 천년의 미소로 불리는 얼굴 무늬 수막새의 미소 (가운데)와 설국암 부처의 온화한 미소, 경주 남산의 신라 보리사 추정의 미륵곡 석조여래좌상(왼쪽) 불상 및 할매 부처(오른쪽)로 통하는 남사 불곡 마애여래좌상의 표정들. 이채근기자
대구경북지역과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나타나고 있다고 하지만 역사 속의 모습은 달랐다. 못을 축조하면서도 오늘날보다도 더욱 상세한 기록을 남기는 등 철저한 신라인들의 정신은 영천 청제비에서 읽을 수 있다. 사진
대구경북지역과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나타나고 있다고 하지만 역사 속의 모습은 달랐다. 못을 축조하면서도 오늘날보다도 더욱 상세한 기록을 남기는 등 철저한 신라인들의 정신은 영천 청제비에서 읽을 수 있다. 사진'이채근기자

40년 전, 시인 조지훈(1920~1968)은 "불상의 모델은 신라인이다. 인도'중국'일본의 어떤 불상보다도 특이하고 원만한 그 풍모는 지금의 경상도 남녀의 얼굴과 같다"고 했다. 특히 석굴암 불상을 두고 "인간적이면서 그대로 인간을 초월한 거룩한 불상"이라 평했다. '불상을 닮은 경상도(영남) 사람'이 사는 경상도는 그동안 '인재의 곳간', '추로지향'(鄒魯之鄕'공자와 맹자의 고향. 예절 있고 학문이 왕성한 지역) 등의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특히 경상도의 중심, 대구(경북)의 이미지는? '수구꼴통도시, 엽기도시, 고리타분하고 갑갑하고 답답해서 떠나고 싶고 희망 없는 도시, 절망의 도시, 고담도시(Gotham City'영화 배트맨에 나오는 부패'타락'범죄 도시),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며 보수적인 지역'''.'(대구경북연구원 자료)

급기야 이명박 대통령마저 "대구경북사람들은 '욱한다'"면서 "'소프트'하게 변해야 한다"고 '훈계'할 정도에 이르렀다. 하지만 역사 속에 면면히 이어온 경상도의 모습은 '이지러진 자화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밖으로 열려 있었다.

◆시대를 앞선 신라인들의 '열린 정신'

'이 비석은 신라시대 청못(菁池)이라는 저수지 수축과 관련 있는 양면비(兩面碑)다…1960년 12월 처음 발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영천에서 내려 도남공단 부근 야트막한 야산 자락에 맞닿은 저수지 청못과 그 옆에 초라하게 관리되고 있는 돌비석 '청제비'(菁堤碑)는 '신라 정신'의 비밀을 알려주고 있다. 536년 세운 것으로 추정되고, 798년 못을 수리한 사실을 적갈색 화강암 앞뒤에 새긴 축조 관련 107자 정도의 기록내용은 천년 세월을 견딘 만큼이나 경이롭다.

못을 만들기 위해 280방(方)에서 7천 명이 참여했고, 어느 부락(村)의 어떤 직위를 가진 사람이, 몇 명이 감독했고, 제방의 길이와 폭, 높이는 얼마인지 등을 알려주는 정보들이 삐뚤삐뚤하게 빽빽이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2월 12일부터 4월 13일'에 걸쳐 '1만4천140명'이 참여했고, 절화(切火'영천)와 압량(押梁'경산)에서 사람을 차출했고, 감독자는 누구인지 등 수리와 관련된 내용들이 세세히 적혀 있었다.

591년 경주 남산(南山)에 신성(新城)을 축조하고 세운 남산신성비(南山新城碑)에는 더 놀라운 사실이 감춰져 있다. 성의 높이와 너비, 축성에 참여한 인물들의 출신 부락과 이름, 관직은 물론 '이 성을 법대로 쌓을 것이며 쌓은 후 3년 이내에 붕괴될 때에는 죄를 받을 것을 서약한다'는 공사 책임을 묻는 내용까지 기록돼 있다.

신라인들의 기록 및 책임정신은 '삼국사기'를 쓴 경주 출신 유학자 김부식과 '삼국유사'를 지은 경산 출신의 일연 스님으로 이어진다. 조선조 가장 활발한 영남 학자'관리들의 개인문집 등 각종 기록물 발간은 이러한 전통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위덕대 채종한 교수는 "통일신라는 선진문물에 대한 수용과 개방, 외래와 토착의 조화, 도전과 창조정신, 지도층의 노블리제 오블리주, 피정복민 및 이주민들에 대한 포용의 리더십, 변화와 혁신으로 일궈낸 결과물"이라며 " 신라인들의 열린 정신은 대구경북사람들 피 속에 흐르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신라의 열린 정신은 골품제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세계 왕조 사상 유례없는 기록을 남겼다. 석탈해왕(4대) 등 8명의 사위가 왕이 된 점이다. 우리 나라 역사를 통틀어 처음으로, 그것도 3명의 여왕(선덕'진덕'진성)을 배출했다. 왕위를 아들과 딸, 사위, 친손, 외손에게도 '개방'한 것이다.

게다가 남해차차웅(2대)의 누이 아노(阿老)는 시조묘의 제사장(祭司長)을 맡아, 광복 이후 첫 여성장관(임영신'1949년)과 국무총리(한명숙'2006년) 배출이란 '초라한' 우리의 여성사와 비교하면 신라인들의 여성에 대한 열린 사고 및 여성 지위의 수준을 가늠하게 한다.

일본의 보물 창고인 정창원(正倉院)에 보관된 50여 점의 신라 모직물 등과 경주 천마총에서 발굴된 5, 6세기 마구(馬具)장식 직물은 신라인의 열린 개방성의 결과이다. 천마총 마구 경우 분석결과(2000년), 그 섬세함이 일본은 물론 훗날 고려와 조선조 제품보다 훨씬 앞선 것으로 조사돼 오늘날 20세기 '대구섬유'의 유명세로 되살아났다. 일찍부터 선진문물에 적극적인 수용과 포용의 대가였다. 당나라의 수도 장안의 바둑판 같은 도시계획을 왕경 경주에 도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주 왕경의 계획적인 조성은 일본에도 영향을 미치게 됐다.

경북대 사학과 주보돈 교수는 '역사 속의 대구, 대구사람들'에서 "대구사람들의 기질적인 밑바탕에는 신라인의 그것이 면면히 흐르고 있지 않을까 싶다. 대구인들 기질의 원형은 거슬러 올라가면 신라에 맥이 닿아 있다"고 했다.

◆'역류'의 땅을 적신 변화와 혁신의 물결

이차돈(異次頓'506~527)과 최제우(崔濟雨'1824~1864), 전태일(全泰壹'1948~1970). 짧은 생애 동안 세상의 흐름을 바꾸고자 했다. 시대의 물길을 돌려놓았고, 혁신적인 삶을 산 대구경북 사람들이다. '새로운 판'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선각자요 혁신인이었다.

신라는 한국 불교 첫 순교자가 된 이차돈의 죽음으로 삼국 중 가장 늦게 불교를 받아들였지만 가장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특히 대중불교의 '첫 새벽'을 연 원효(元曉)의 사상은 일본과 중국은 물론, 멀리 인도에까지 전파돼 신라불교를 세계에 알렸다. 원효 역시 이름처럼 혁신적인 삶을 살았다.

경주의 몰락한 양반 집안 출신인 최제우도 평등세상을 위한 동학(東學) 창시로 새로운 세상을 열려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혁신인이었다. 동학은 뒷날 혁명(1894년)의 도화선이 됐고 우리 정신사상사에서 봉건과 근대를 나누게 되는 기준을 제시했다.

영남대 백승대 교수는 "서로 이질적이라고 여겨졌던 유교, 불교, 전통의 선을 융합하여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낸 것은 혁신적인 사고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대구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일찍 노동자의 삶을 시작한 전태일 역시 이 땅에 노동운동의 새벽을 연 선각자였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며 1970년 분신했고 그는 죽음으로 세상을 일깨웠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에 불씨를 당겼고 노동운동의 전기가 됐다.

이처럼 변화의 새판을 벌이거나 혁신적인 삶을 살다간 대구경북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백승대 교수는 "대구경북의 역사 속에서 새판 벌이기의 사례를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다. 보수성이라는 잣대만으로 우리 스스로를 평가받기에는 억울하다고 할 정도로 새판 벌이기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1960년 대구 2'28운동은 민주화운동의 새판 벌이기로 역사속에 기록될 만하다"고 했고 "국채보상에 대한 발상과 조직적 대응 역시 자랑스러운 새판 벌이기였다"고 평가했다. 지금은 일본 중국 등 해외로 퍼져나간 '대구 담장허물기'도 새판 벌이기의 하나였다고 그는 덧붙였다.

정인열기자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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