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벌거숭이

마라톤 코스 가로수와 가로수 사이 '띠 녹지'에는 때맞춰 코스모스가 피기 시작했다. 27일 오전 9시, 전 세계의 이목은 대구에 집중된다. 세계 여자 마라토너들이 이 길을 가장 먼저 달릴 것이다. 세계 3대 스포츠 대전이자 지구촌 최대의 육상 축제인 2011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마침내 막이 오른다. 세계적인 스타들을 트랙에서, 거리에서 직접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지역민으로서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오로지 함성과 풍성한 기록만 남았다. 대회 기간 동안 쾌청한 날씨를 기원하는 기청제(祈晴祭)도 엊그제 지냈다. 세계의 약 80억 인구가 이 축제를 지켜보는데 한 치의 오차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의 입장에서인가, 어째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전 세계를 향해 대구가 발가벗겨지기 때문이다.

유니버시아드, 월드컵 등 국제 행사 경험이 많은 대구지만 이번 육상경기는 색다르다. 스타디움을 벗어나는 마라톤 경기가 있기 때문이다. 대구 도심 두 바퀴 반을 도는 마라톤은 대구를 세계에 알리는 절호의 기회다. 중계용 차량이 2시간 이상 대구의 구석구석을 비춰주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다. 헬기가 뜨면 대구 도시 전체의 윤곽이 그대로 노출된다.

물론 마라톤 코스는 가로수가 울창한 꽃길 도로지만 하늘에서 내려다본 대구는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출발 지점인 국채보상공원은 물론 백로들이 노니는 신천이 클로즈업 될 것이고, 대구의 자랑거리인 수성못 분수 쇼도 한몫을 할 것이다. 이렇게 대구의 심장은 완전히 개방된다.

그러나 개방되는 만큼 우려되는 바도 많다. 옥상 개량 사업을 많이 했지만 혹시 하늘에서 내려다본 대구의 모습이 지저분하지는 않을까, 세계 건각들을 대하는 시민들의 매너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보지 못했던 도시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기우(杞憂)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하지만 자신 있다. 비록 도시의 알몸이 드러나지만 이 알몸을 통해 대구의 정체성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

대구 시민은 대회 기간 동안 모두 벌거숭이가 되자. 그리고 대구의 숨은 속살의 미(美)를 전 세계에 알리자. 문화적으로 앞선 도시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이제 다시 열흘 후면 대구 스타디움은 텅 빌 것이다. 그러나 이 한마디 반응을 대구 시민은 갈구하고 있다. "어, 대구가 그렇게 아름다운 도시였구나."

윤주태(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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