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봉산문화거리…화랑 모여들자 골동품점·화방·표구사들 "우리도"

70년대 인쇄골목. 그림이 접수… 미술 명소 뜨자 복합 문화공간

"동시대 예술을 즐기고 싶다면, 봉산문화거리로 오세요."

대구에서 문화의 향기를 가장 짙게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누구나 '봉산문화거리'를 꼽을 것이다. 20개의 화랑(갤러리)을 중심으로 골동품점, 화방, 표구사 등의 미술 관련 업체들이 모여 있고 대구 공연문화의 메카인 봉산문화회관도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문화거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골목에는 남다른 예술적 분위기가 흐른다. 가로등 하나, 가로수 하나, 건물 인테리어 하나에도 화려하지 않지만 감각이 살아있다. 상인들은 자신 있게 말한다. "봉산문화거리에는 나눔과 소통, 문화의 향수가 있습니다"

◆천재화가의 혼이 살아있는 골목

봉산동 일대는 예전엔 인쇄소로 유명했다. 도시의 번화가가 교동과 향촌동 쪽에서 중앙로로 넘어오면서 봉산동 인쇄소들은 높아지는 임대료를 부담하지 못했고, 지금의 인쇄골목이 있는 남산동으로 대거 옮겨갔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를 거쳐 대부분의 인쇄소가 골목을 뜨고 그 자리에 송아당 화랑, 동원화랑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1980년대 이후로 화랑이 꾸준히 늘어 올해 들어서도 2군데가 추가로 문을 열었다. 역사 깊은 화랑과 신생 화랑이 모여 있다 보니 30~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화상(畵商)들이 모여 다양한 그림들을 선보인다.

봉산동에 화랑이 모여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천재화가라 불리는 이인성이 1940년대 골목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역사가 있다. 1992년 골목이 '봉산문화거리'로 지정된 것도 이인성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지금도 봉산동에는 이인성의 혼이 살아있다. 골목 한쪽에는 천재화가를 기리는 표석이 서 있고, 제 2의 이인성을 꿈꾸는 작가들의 작품이 걸려 있고, 화랑들은 새로운 천재작가 발굴해 힘쓰고 있다.

◆화랑의 역할은 작가와 그림을 발굴하는 것

2004년 봉산문화회관이 문을 열면서 골목의 예술은 더욱 풍성해졌다. 미술작품뿐 아니라 공연예술도 즐길 수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늘었다. 카페나 레스토랑 같은 편의 시설도 들어섰고 다양한 골목 예술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골목 상인들은 화랑이나 갤러리가 미술관과 달리 동시대 미술을 다룬다는 점을 강조했다. 화랑이라는 이름을 건 많은 업체들이 소유주로부터 구매자에게 판매를 중계하는 유통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본래 화랑은 작가에게서 그림을 '발굴'해 전시를 기획하는 것이 큰 역할이다. 봉산동의 화랑들은 이런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한다.

지나치게 상업적 화랑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화랑들은 자체적으로 '봉산문화협회'를 만들었다. 협회는 기획의 기능을 상실하거나 작품의 진위여부 문제가 생기는 화랑에 대해서는 자체적으로 제재를 가하기도 하면서 골목의 명성을 유지해나가고 있다.

◆매월 첫째 금요일은 봉산문화거리 가는 날

봉산문화거리는 멈추지 않는다. 매년 다양한 문화 이벤트로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골목을 찾는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애쓴다. 봄에는 '봉산공예디자인전'으로, 가을에는 '봉산미술제'로 손님들을 맞는다. 올해 19회째로 매년 10월 치러지는 '봉산미술제'에서는 화랑들이 작가들의 초대전을 열고 거리행사를 펼친다. 봉산공예디자인전은 도자기, 주얼리, 금속공예 등 공예디자인 작품을 전시하고 대학생들의 프리 마켓를 여는 행사로 올 4월 11회째를 맞았다.

올해 등장한 새로운 행사는 'First Friday'. 4월부터 매월 첫째 금요일을 봉산문화거리의 날로 정하고 거리 행사와 퍼포먼스를 통해 골목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힙합, 록, 댄스, 포크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공연행사를 선보여 골목을 복합 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골목을 아껴주는 사람들과의 소통도 신경 쓰고 있다. 봉산문화거리 블로그(http://blog.naver.com/bongsanart)를 통해 화랑들의 전시일정과 전시내용을 소개하고 골목행사도 알린다.

다양한 노력들로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봉산문화거리는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각종 블로그 나 인터넷 카페에는 골목 행사나 전시를 관람한 사람들의 후기가 넘쳐나고 예술적 향기가 넘치는 골목 카페나 레스토랑도 각광받고 있다.

보통 화랑이라면 그림을 사는 곳이라는 생각 때문에 들어오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다. 봉산동 화랑들은 더 많은 사람들이 골목을 찾아줘 골목에 활기를 더하기를 바란다. "그림과 거리 공연을 즐기는데 돈 안 받습니다. 문화 즐기러 봉산문화거리로 오세요!"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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