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달구벌)는 한때(신문왕 9년'689년) 천년 왕국 통일신라의 수도가 될 뻔했다. 경주에서 달구벌로의 왕경 천도를 위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해 윤 9월 26일 신문왕이 대구 인근인 장산군(獐山郡'현 경산시로 추정)까지 순행(巡行)했다는 기록(삼국사기 신라본기)도 남아있다. 그러나 달구벌은 조선조 임진왜란 이후 1601년 경상감영이 설치될 때까지 한동안 역사에서 잊혀지는 듯했다.
그런 달구벌이 조선조 경상감영 설치 이후 영남으로 불린 경상도의 중심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낙동강을 낀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였고, 심각한 중앙 조정의 집권 노론(老論) 세력과 영남 남인(南人) 세력 사이의 당쟁 갈등에서도 약간은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달구벌은 근세 들어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비롯해 1950년 북한의 6'25 남침 전쟁에서 낙동강 방어선 사수, 1960년 2'28학생운동 등 역사의 주요 고비 때마다 나름의 역할을 하는 도시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1956년 제3대 대통령선거 때는 야당 대통령 후보인 조봉암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등 야성(野性)의 진보 도시였던 달구벌은 그러나 선산(구미) 출신의 박정희 대통령 집권 이후 영남권 출신의 대통령이 잇따라 배출되면서 정치적으로 고립되는 양상을 맞았다.
급기야 근래 들어서는 '수구 꼴통 보수도시, 엽기도시, 고담도시, 사고도시(두 차례의 대형 지하철 참사)…'에다 '닫힌' 답답한 도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에 이르렀고, 도시 전체가 '희망 없는 도시'처럼 비치게 됐다.
바로 그런 도시 달구벌에서 세계 3대 스포츠 제전의 하나인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오늘(27일) 오후 7시 화려한 개회식을 갖고 9일간의 열전에 들어간다. 지난 2003년 174개국 전 세계 대학생 선수들이 모인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보다 더욱 많은 202개국 선수(1천945명)들이 출전, 기량을 겨룬다. 두 대회 모두 중앙정부의 무관심과 푸대접 속에 '꼴통' 대구 사람들의 힘으로 이뤄낸 유치였다. 오늘부터 대구는 바야흐로 '쪼춤(치)바리'의 날들이다.
이번 '쪼춤(치)바리'로 '닫힌 도시'라는 잘못된 시각이 '세계 속의 열린 도시, 대구'로 바뀌고 열린 도시의 바뀐 이미지를 80억 지구촌 사람들에 심어주는 '서막'(序幕)이 되길 거듭 기원해 본다.
정인열 중부지역본부장 oxe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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