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인들의 경기 참관기] 4)엄창석 소설가의 400m 경기

인간의 역동성, 감동 넘는 충격 그 자체

대회 3일째 저녁, 나는 젊은 소설가 한 사람과 함께 아들과 아들 친구들을 데리고 경기장을 찾았다.

우선 내가 놀라웠던 것은 시민의식이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달라는 요구가 있었지만 대중교통 시설과 제법 먼 거리에 따로 떨어져 있는 스타디움이라 승용차가 꽤 붐빌 것으로 예상했다. 내가 입구를 통과할 때까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승용차는 단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단체입장권이 많이 팔렸다는 보도와는 다르게 중고등 학생들은 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이 가족 단위였다. 그러니까 입장권 구매 방식과 관계없이 사람들은 육상경기가 보고 싶어서 스타디움을 찾아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날 경기는 저녁 7시, 남자 110m 허들 준결선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바로 전날, 이번 대회의 하이라이트인 남자 100m에서 우사인 볼트가 실격한 후, 관심도가 뚝 떨어질 거라는 예상도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다. 인파들이 엄청났다. 8시가 되자 스타디움은 실로 빈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관중들은 선수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탄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며 경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육상이 비인기 종목이라 단언하고 TV 편성조차 꺼려하는 방송사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현장이었다. 어느새 우리나라도 스포츠에서 기초 종목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선진국에 다다랐구나 하는 사실을 실감케 했다.

불행하게도 내가 가진 입장권의 좌석은 전광판 바로 밑이었다. 트랙 경기의 출발선과 대각선일뿐더러 투포환의 안전그물로 필드가 가려져 있어 선수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트랙경기 출발선이 보이는 곳으로 이동해, 서서 경기를 관람했다.

이날은 남자 110m허들, 남자 400m, 여자 100m와 투포환과 장대높이뛰기가 있었다. 사람들 틈에 어깨를 집어넣은 채로 트랙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점점 감정이 고조되는 것을 느꼈다. 같이 온 아들녀석은 친구들과 노느라 어딘가로 가버렸고 젊은 소설가는 카메라를 들고 먼 장면을 포착하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이었다. 남자 400m 준결선을 보고 있을 때였다. 인간의 한계를 가장 크게 느낀다는 400m 경기. 라인을 따라 트랙 한 바퀴를 전력 질주하는 선수들이, 어느 순간에 말의 다리를 가진 인간처럼 보였다. 인코스와 아웃코스의 라인이 가진 착시 현상으로 인해 속도감이 더 느껴졌으며, 아웃코스를 따라잡는 인코스 선수들의 강한 힘이 내게 전달되어 마치 내 몸속에서 말들의 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뿐만 아니다. 포환을 던지는 선수들이 펼치는 믿기 어려운 몸의 회전, 장대높이뛰기에서 장대를 바닥에 꽂으며 몸이 공중으로 솟구치는 선수들. 나는 거기서 조금도 아낌없이 말하건대, 인간의 찬란한 육체를 보았다.

전에도 육상경기를 관람한 적이 있긴 했다. 88올림픽 때 역사상 최고의 육상선수라고 하는 칼 루이스와 벤 존슨의 100m경기였다. 당시에는 단지 세계신기록 소유자들의 각축이라는 점에서만 흥미로웠다. 이상한 일이다. 이제는 기록 따위에는 관심이 적어지고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육체가 트랙을 달리는 모습에 감동이 되는 것이다. 나와 같은 종족이 말이 되고 새가 되는 모습에 감동이 되는 것이다. 얇은 피부에 솜털만 난 나약한 육체의 인간이 저토록 강한 힘을 소유할 수 있구나. 그리고…또 다른 의미에서 역사를 발전시킨 가장 근원적인 동력이 바로 저기에 있구나, 나는 관중들 틈에 섞여 나도 모르게 탄식하듯 무릎을 치고 있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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