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은 길었다. 이명규(가명'41) 씨는 2004년 서울의 한 병원에서 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하반신이 마비됐다. 이 씨 부부는 법정에서 이 수술이 '의료 과실'이라고 주장했고 병원은 이를 부인했다. 소송에서 진 것보다 더 힘든 것은 이 씨가 평생 누워지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었다. 이젠 '통증'까지 그를 짓누른다. 하루 종일 그를 따라다니는 통증을 이 씨는 "뼈가 불에 타들어가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삶을 마비시키고 싶은 고통
이달 26일 오후 대구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좁은 방 절반 이상을 차지한 큰 침대에 이 씨가 곧은 자세로 누워 있었다. 그가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며 옆에 있던 아내를 불렀다. 통증이 심하다는 신호였다. 아내 정수정(가명'39) 씨는 서랍을 뒤져 흰색 알약을 꺼냈다. 진통제 '데메롤'이다. 이 약이 없으면 이 씨는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다. 8년 전만 해도 이 씨는 두 발로 땅을 밟았다. 1997년 당시 대구 수성구에서 조경 사업을 했던 그는 사기를 당해 1년도 안 돼 사업을 접어야 했다. 외환위기가 우리나라를 덮치기 직전이었다. 그래서 택한 일이 슈퍼마켓에 이름 없는 과자를 납품하는 도매업이었다. 이 씨는 2.5t 트럭에 과자를 잔뜩 싣고 경북과 대구를 오가며 과자를 팔았다. 실업자가 넘쳐났던 그 시절,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일을 시작한 지 5년째 되던 해에 더 큰 일을 당했다. 2002년 트럭 짐칸에서 물건을 꺼내다가 1.5m 아래 바닥으로 떨어져 버린 것. 엉덩이가 먼저 바닥에 닿으면서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때 곧장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어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아내 정 씨는 잘 알고 있었다.
◆걷지 못하는 남편
이 씨는 참고 견디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사고 뒤 허리가 아파 일을 그만둬야 했지만 수술 대신 침술 치료로 견뎠다. 그러다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고생했던 주변 사람이 "서울에 인공디스크 시술을 잘하는 곳이 있다"고 소개해줬다. 부부는 2004년 3월 인공디스크 삽입술을 받기 위해 무작정 디스크 전문 병원이 있는 서울로 향했다.
이 씨는 그해 수술을 받았다. 그 뒤 재활 치료에 힘썼지만 몸이 좀체 회복되지 않아 1년 뒤 같은 병원에서 재수술을 받았다. 완치를 위해 택했던 2차 수술 뒤 고통의 강도는 심해졌다. 혼자 걸을 수 있었던 이 씨에게 하반신 마비 증세가 찾아온 것. 이 씨 부부는 갑작스런 절망을 의료 과실이라고 굳게 믿었다. 병원에서 첫 수술 때 삽입했던 인공 디스크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보철물을 넣는 수술을 행한 것이 잘못이라는 다른 의료진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이를 증명해줄 자료가 없었다. 남편은 하반신 마비에 경련, 통증으로 고통받지만 정밀 검사를 해봐도 정확하게 어디에서 통증이 유발되는지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정상'이라고만 나왔다.
누워있는 남편 대신 아내가 발로 뛰었다. 의료사고를 당한 피해자들을 돕는 시민단체를 찾아가도 "병원 과실을 입증할 자료가 없어 안타깝다"는 말만 들었다. 서울에서 유명하다는 변호사 사무실 수십 군데를 찾았다. 의무 기록지를 보여주고 소송을 의뢰하면 하나같이 "승소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며 고개를 저었다.
◆지루한 싸움의 끝
아내는 컴퓨터를 켰다. 남편의 아픔을 부족한 글로 적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렸다. 세상 사람들의 위로와 응원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때 서울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한번 해보자"는 연락이 왔다. 당시 그 변호사는 "변호사 선임료와 의무기록지 판독 비용은 승소한 뒤에 지불해도 된다"며 가난한 이들의 형편까지 봐줬다. 정 씨는 2005년 서울고등법원에 해당 병원을 상대로 의료과실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했다. 결과는 1심에서 원고 패소였다. 서류만 가지고 병원의 과실을 증명하기란 어려웠다. "그래도 변호사님이 '포기하지 말고 항소해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고…." 정씨는 말끝을 흐렸다. 무리한 싸움이었을까. 항소 역시 기각됐다. 법원의 화해권고로 병원에서 약간의 보상금을 받는 것으로 소송은 끝났다. 그 돈으로 이 씨 부부는 이곳저곳에서 빌린 수술비와 밀린 병원비를 냈고 다시 빈털터리가 됐다.
지루한 싸움이 끝난 뒤 부부의 삶은 더 초라해졌다.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와도 지낼 곳이 마땅치 않아 영구임대아파트를 신청하고 1년 넘게 기다렸다. 그렇게 3년 전 둥지를 튼 곳이 40㎡(12평 남짓) 규모의 지금 아파트다. 이제 그들의 일상은 무한 반복이다. 통증으로 하루에 3시간도 채 못 자는 남편이 뒤척이면 아내는 남편 다리를 주무르고 진통제를 건넨다.
이 씨는 지체장애 5급이다. 그는 밤잠을 못 잘 만큼 고통받고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 장애인 등급제는 통증을 장애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반신 마비만 인정받아 5급 판정도 겨우 받았다. 한 달 생활비는 정부 지원금 50여만원이 전부다. 장애 등급이 높게 나와 장애인 활동 보조 도우미 지원이라도 받으면 정 씨가 밖에 나가 생활비라도 벌 텐데 그것조차 불가능하다. "통증이 없는 삶, 이 바람조차 우리에겐 사치인 것일까." 정 씨는 하늘을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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