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구 도시철도 2호선은 만원이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관람하러 가는 사람들로 아침부터 도시철도 2호선은 들끓는다. 초등학생에서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많은 사람들이 세계육상경기를 관람하러 도시철도 2호선을 탄다. 놀라웠다. 스타디움도 아닌데 벌써 도시철도 안에서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아직 늦더위가 끈질기게 꼬리를 물고 있는데 대구 시민들의 열정은 도시철도 안에서도 뜨겁다.
어제저녁 육상경기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 화면에 집중했다. 아니 몰입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감탄하고 박수치며 경기를 즐겼다. 지금까지 한 번도 집중해서 육상경기를 본 적이 없었는데, 한번 집중하기 시작하자 스르르 육상 경기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더 빨리, 더 멀리, 더 높이 뛰어오르고 장애물을 뛰어넘는 선수들이 힘을 분출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오랜 훈련의 산물인 탄탄한 근육들이 터질 듯이 힘을 뿜어내며 감동을 몰고 왔다. 만약 지금 죽을 것처럼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당장 이 세계육상경기를 보러 와서 힘찬 에너지의 세례를 받고 벌떡 일어났으면 좋겠다.
여자 100m 결선 경기는 숨죽이게 했다. 캠벨 브라운과 지터 같은 실력과 노련함을 갖춘 선수들은 그 짧은 순간 동안 열광하게 했다. 10초90으로 1위를 차지한 미국의 지터 선수는 '무관의 단거리 여왕'이라는 꼬리표를 떼며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그리고 남자 장대높이뛰기 결선 경기에서 선수들이 장대를 잡고 새처럼 날아오르는 순간들을 지켜보며 그때 함께 날아올랐다. 인간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가슴 뭉클한 장면들이 쏟아지는, 그동안 찬밥처럼 외로웠던 육상 경기도 충분히 재미있고 즐거웠다.
고산역에 내려서 무료 순환버스를 타고 대구스타디움에 도착했다. 사람들의 열기가 웅장한 스타디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미 경기장 입구에서부터 축제는 시작되었다. 평일 오전인데도 가득 차 있는 관중석을 둘러보며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성공을 예감했다. 예선 경기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의 긴장되고 박진감 넘치는 결선 경기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예선 경기를 보기 위해 온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예선 경기는 주목받지 못한다. 그러나 예선 경기에는 선수들의 인생 이야기가 묻어난다.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들의 인간적인 모습들이 속살 그대로 드러난다. 실력이 못 미쳐도, 실패를 되풀이해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아름다운 열정이 꿈틀댄다. 그래서 예선 경기는 마음을 울리는 것이다.
스타디움으로 소풍 나온 사람들. 사람들은 음료수를 마시고 김밥을 먹으며 선수들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고 열렬히 환호하며 함성을 질렀다. 선수들 무리에서 뒤처져 있거나 실패를 거듭하거나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선수들에게는 더 힘차게 응원해 주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아니더라도 나라를 떠나서 한 개인의 성취를 격려해 주었다. 여자 5,000m 예선 경기는 그다지 시선을 끌지 못했다. 사람들은 남자 높이뛰기 예선 경기와 여자 7종 경기 중 멀리뛰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뜨거운 햇볕 속에서 힘차게 트랙을 뛰고 있는 한 무리의 여자 선수들 속에서 홀로 대열에서 뒤처져 있는 까만 피부의 한 선수가 눈에 들어왔다. 사바나 피시 선수는 열심히 뛰고 있었지만 결국엔 선두그룹과 1바퀴 이상 차이 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끝까지 그녀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꼴찌라도 당당히 결승선을 밟은 사바나 피시 선수에게 갈채를 보내 주었다.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와 열정에,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들이 펼쳐 놓는 인생 스토리에 감동이 물결쳤다.
지금은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집중하고 몰입할 때다. 70억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이지 않은가. 대구에 집중된 세계인의 눈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대구 시민들이 해낸 장한 일을 스타디움에 와서 한바탕 축제로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 열기와 함성을 가슴으로 뜨겁게 느껴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다가온 행복의 시간들을 놓쳐버리지 말자. 지금 가슴을 움츠리고 있는 사람들은 여기 대구스타디움에 와서 활짝 가슴을 펴고 크게 웃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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