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너무 안 보여 드린 것 같아요. 제가 작품을 많이 한 편은 아니었잖아요. 색다른 도전이었다기보다 제 안의 모습을 많이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배우 고수(33)는 영화 '초능력자' 이후 전쟁 영화를 택했다. '고지전'은 1953년 한국전쟁 말기 휴전을 앞두고 동부전선 최전방 애록고지에서 벌어진 군인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는 290만여 명이 보며 전쟁을 향한 관심을 증명했다.
고수에게는 해발 650m 높이의 백암산에서 뛰고 구르는 등 사서 고생해야만 하는 6개월간의 도전기였다. 하지만 그는 기분 좋은 기억으로 회상했다.
고수는 "우리나라 남자 연기자로서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는 누구나 한번 해보고 싶어하는 장르가 아닐까"라며 "촬영을 하면서 내 안에 이런 모습이 또 있었구나. 나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 같아서 좋았다"고 웃었다.
애록고지 '악어중대'의 실질적 리더 중위 '김수혁', 그에게는 '전쟁광'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카리스마가 숨겨져 있다. 2년 넘는 시간 동안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온 비결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유약한 면이 존재한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이 있기 전, 이등병 시절 김수혁의 모습이 그랬다.
전쟁과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등병 '김수혁'. 고수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전혀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김수혁이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요인이 더 컸으니까요. 김수혁을 표현하는 데 재밌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촬영을 이어가다 보니 정말 힘들었고, 고생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웃음)
악어중대에서의 지휘자 사망사건과 북한군과의 내통 사실을 조사하러 온 친구 '은표'(신하균)와의 재회. 유약했던 수혁이 변했음을 절실히 보여줘야 하는 장면이다. 은표를 다시 만났을 때 의정부 전투에서 두려움에 떨며 십자가를 들고 주기도문을 외우던 이등병 수혁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동일 인물이지만 전혀 다른 느낌을 전해 주도록 연기하기가 힘들었을 것만 같다.
"'은표와 재회하는 수혁은 어떤 모습일까, 변한 수혁의 마음 안에는 뭐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2년의 시간을 채우는 데 고생했죠. 그간의 과정을 담아두고 연기를 해야 하는데 그 변화들이 어떻게 하면 표현될 수 있을까 정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고수는 이를 표현하기 위해 장훈 감독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했다. 변한 수혁이 시체를 바라보는 눈이나 은표를 바라보는 눈빛 등은 많은 생각과 고민 끝에 나온 장면이다. 물론, 최대한 표현을 하려 했으나 아쉬움도 있다.
"누구나 다 자기가 연기한 모습을 보고 만족스러워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시험을 보고 난 다음에 답을 채점하는 기분이었고, 화면에서는 제 모습만 보였죠. 두 번째 봤을 때 '아! 고지전이 이런 내용이었구나'라고 알게 됐어요."(웃음)
극중 수혁이 은표를 향해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도 인상 깊다. 실제 화난 모습이 조금이라도 반영된 것인지 묻자 "실제로는 비슷한 부분이 없다"며 "화를 안 내는 사람은 없지만 될 수 있으면 화를 내지 않으려 한다"고 미소 짓는다.
고수는 또 2, 3회차 촬영이 기억에 남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 비탈길을 오르고, 폭탄 사이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은 체력적으로 자신 있었지만 진흙탕 속에서의 상황은 악몽 같았다.
"진흙탕 속에 들어가서 진흙 범벅이 됐죠. 그 흙탕물 속에서 자잘한 나무 가시가 옷 속으로 들어와서 몸을 찌르더라고요. 흙탕물 밖으로 나와 있을 때도 그 찌르는 느낌이 너무 싫었어요.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느꼈죠. 그냥 웃음만 나오던데요?"(웃음)
그는 유일한 해결방법은 현장 스태프가 자신의 몸 위로 물을 뿌려주는 방법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임시방편이었다며, 당시 기억이 나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북어포를 떠올려보면, 그 작은 가시 같았다"며 "눈에 거의 보이지도 않는 작은 것 때문에 피부병도 생겨 병원을 갔다"고 털어놓았다.
물론 안 좋은 기억도 있지만 즐거운 작업이었다. "악어중대원으로 나오는 연기자들이 모두 재주꾼이에요. 촬영을 빨리 끝내놓고 노래도 부르고 게임도 했어요. 다음날 일찍 촬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이들 마시지는 않았지만 서로 다독여 준 기억이 나네요."
특히 "고창석 선배가 현장에서 제일 큰형이라 남들이 힘들거나 지쳐 있을 때 도움을 줬다"고 추어올렸다. 이어 "다른 배우들과도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며 "악어중대의 호흡이 무척이나 중요한 영화였다"고 회상했다.
'작품을 고르는 건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고수. 그는 "제대하고 3번째 작품이었는데 빨리 더 많은 작품을 하고 싶다"고 욕심을 냈다. "드라마 대본이나 영화 시나리오가 들어오는데 잘 보고 고르려고 하고 있어요. 운명 같은 작품을 빨리, 또 만나고 싶어요."(웃음)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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