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요코야마의 韓·日 이야기] '학문을 권함'

여름방학을 맞아 대학원 박사 과정 동료들이 모여 회식을 했다. 연구실에서 매일 얼굴을 맞대고 있지만 모두가 종일 컴퓨터에 매여 있기 때문에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다. 오랜만에 일상생활과 연구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또래들은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일구고 있으나, 비싼 학비를 내면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우리들의 생활은 외로운 불안과의 싸움이다. 박사 학위를 취득해도 취직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 하물며 지금 일본에서는 지진과 원전 사고의 영향으로 안전을 걱정하며 살고 있다. 우리는 왜 위험을 무릅쓰면서 배워야 하는가? 동료들도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할 때 시험을 본다. 대학에 서열이 있는 것은 세계 공통이지만, 일본에서는 고등학교에도 서열이 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실력에 맞는 고등학교를 선택해 시험을 본다. 그래서 교복만 보면 그 학생이 어느 정도의 실력인지를 알게 된다. 언니가 지역에서 가장 좋은 공립 고등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에, 나도 언니와 같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부했다. 시험에 떨어지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공부 잘하는 언니, 공부 못하는 동생'으로 비칠까봐 두려웠다.

합격을 해서 들어간 고등학교 3년간은 나에게 가혹했다. 수업을 따라가기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주위 사람들이 친구가 아니라 경쟁자가 되어 있는 것이 더 힘들었다. 책상을 나란히 하고 있어도 한 학기 동안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서로 이름도 모를 만큼 거리감이 있었다.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로 천식이 심해져 체육 수업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무리해서 대학에 가지 않아도 돼"라며 걱정하시는 부모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평소 가슴에 품고 있던 외국인을 상대로 한 일본어 교사의 꿈도 이룰 수 없을 것 같아 입술을 깨물고 울었다.

일본에서는 2009년도에 대학 진학률이 50%를 넘었다. 20년 전에 비해 거의 2배가 된 것이다. 저출산의 영향도 있지만, 자기가 원하는 대학을 고집하지 않으면 90% 이상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대학 진학뿐만 아니라, 지금의 젊은이들은 옛날 사람처럼 고생하지 않고도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어른들이 만들어준 온실에서 자라는 젊은이들은 누군가가 물을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노력하고,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면서 살아가는 씩씩한 모습을 어른들도 더 이상은 보여주지 않게 되었다.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사람 밑에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고 후쿠자와 유키치는 말했다. 일본의 1만 엔 지폐에 초상화가 들어 있는 그가 쓴 '학문을 권함'이라는 책의 한 구절이다.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말이지만, 그 다음 구절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귀천상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열심히 학문을 하여 사물의 이치를 아는 사람은 귀인(貴人)이 되고 부(富)를 얻을 수 있으나, 학문을 하지 않는 사람은 가난뱅이나 천한 사람이 된다. 따라서 학문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학문을 배워야 개인과 국가가 독립을 하고 일본이 식민지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후쿠자와는 생각했다. 그의 가르침대로 학문을 통해 일본은 개인의 자유와 독립을 손에 넣었고, 서양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지 않고 근대화에 성공했다.

대학원에서는 '연구란 무엇인가'를 자주 거론한다. 어느 교수는 "연구는 자신의 물음에 스스로 답해가는 것"이라고 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과 같다. 스스로의 질문에 답을 반복하면서, '나'라는 인간의 본질을 알아 가는 것이다. 현실도 미래도 불안정한 나날 속에서 눈앞의 불안과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종료해 버리면, 더 이상 앞날은 없다. 그래서 살아있는 한 물음을 계속하고,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학문을 위해 흘린 땀과 눈물은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거름이 된다. 학문은 현대 사회에 사는 우리에게 자유와 독립을 가져다준다고 나는 믿고 있다.

(일본 도호쿠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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