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구 약령시…한의원·약방·약업사 200여곳 '한방의 원조'

한방문화사업과 약령시브랜드로 전성기의 명성 회복을 위해 약령시가 변화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한방문화사업과 약령시브랜드로 전성기의 명성 회복을 위해 약령시가 변화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한약재도 사고 한방문화도 즐길 수 있는 약령시로 오세요"

대구 중구 약령시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쌉싸래한 한약재 냄새가 손님을 반긴다. 눈을 돌려보면 600여m 남짓한 골목 양쪽으로 빼곡히 자리 잡은 약업사, 한약방, 한의원 등 한방관련 업체 200여 개와 골목 곳곳에 약령시 상징물들이 지나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대구 약령시는 우리나라 기네스북에 가장 오래된 약령시로 등재돼 35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세월에 따라 그 모습은 조금씩 변해가지만 옛 명성을 지키기 위한 상인들의 노력으로 약재시장 뿐 아니라 관광명소로도 자리매김했다.

◆1658년 개장-353년 전통의 약령시

약령시가 처음 열린 자리는 지금의 경상감영공원 일대였다. 조선 효종 9년인 1658년, 지금의 공원 자리에는 이름처럼 경상감영이 자리하고 있었다.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낙동강 등지에 좋은 약재가 많이 나면서 중앙으로 상납하는 약재를 이곳에 집결시키고, 남은 것을 일반인들에게 판매하면서 감영 주변으로 장이 서기 시작했다.

약령시가 생길 당시 약재 매집은 국책사업이었기 때문에 책임을 맡은 경상감영에서 객사 앞뜰에 약령시를 개설했다. 약재는 주로 봄, 가을에 채취했기 때문에 음력 2월 초하루부터 그믐까지의 춘령시(春令市)와 음력 동짓달 초하루부터 그믐까지의 추령시(秋令市)가 열렸다.

1895년(고종 32년) 8도제가 폐지되면서 경상감영이 사라지고 약령시를 관장하던 행정기관도 없어지면서 1908년 추령시부터는 지금 약령시가 있는 남성로 일대에서 장이 서기 시작했다.

◆좋은 약재도 대구바람 안 쐬면 약효가 없다

1900년 추정으로 거래 상인은 1만 명, 거래액은 100만원 이상이었다. 당시 서울의 기와집 한 채가 1천원 정도 였으니 100만원은 엄청난 규모였다. 이 때문에 아무리 좋은 약재라도 '대구 令바람 안쐬면 약효가 없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구 약령시가 유명해졌고, 북한의 원산이나 함흥 등지에서 생산된 약재라도 대구로 왔다가 다시 생산지로 실어갈 정도였다. 심지어는 중국, 만주, 러시아, 인도 그리고 유럽까지 세계 각지에서 약재와 약재상들이 모여들어 세계적 약재 유통 거점이기도 했었다.

지금도 그 명성은 여전하다. 2대, 3대를 거쳐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한 전통 있는 한약방과 한의원들이 많고 100여 개가 훌쩍 넘는 약업사들이 좋은 약재를 판매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 번 이용한 고객은 단골이 되는 경우가 많고, 멀리서도 골목을 찾아 한약을 지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2대째 한약방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우리 약방에는 다른 곳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희귀한 약재들도 사용한다"며 "약효가 좋아 아버지 대에서부터 사용해 오던 것들"이라고 말했다.

◆전통을 지키기 위한 상인들의 노력

350여 년의 세월에 약령시에도 수많은 위기가 있었다. 1910년에는 조선총독부의 통제로 거래액이 10만원 수준으로 축소되고, 해방 후에도 한국전쟁으로 인해 한동안 장을 열지 못하면서 오랫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하지만 1978년 약령시보존위원회의 전신인 약령시부활대책위원회가 구성돼 약령시축제를 개최하고 1992년 태평로 한약재도매시장이 남성로로 옮겨오면서 부활의 기지개를 켰다. 이후 상인들로 구성된 보존위원회의 추진으로 약령시 전시관을 개관하고 한방특구로 지정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에 들어서는 다시금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건강식품이 인기를 얻으면서 한약을 찾는 손님들이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10월부터 한약도매업소 자가포장금지가 시행되면서 직접 약재를 손질해 판매하던 약업사들이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약업사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큰 업체에서 포장해서 나온 약재만 팔게 되면 우리 가게 만의 경쟁력이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약령시보존위원회는 위기를 곧 기회라고 보고 있다. 약령시 이름으로 브랜드를 만들어 위기를 타개할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사업설명회를 통해 골목 상인들에게 브랜드의 필요성을 알리기도 했다. 또 다양한 한방관광상품을 개발해 단순한 한약재 유통뿐 아니라 고부가가치를 창출해 골목을 활성화시킨다는 계획이다.

약령시보존위원회 강영우 이사장은 "올해를 약령시 부활의 원년으로 삼고 지금껏 추진해온 활성화 노력이 성과를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며 "상인들이 전통을 지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가져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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