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더하기와 빼기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도 이래저래 딱한 일이지만, 이미 알아버린 것을 모른 척하고 살아가기란 피를 말리는 노릇이다. 목구멍에 걸린 가시가 아니라, 아예 가슴 깊은 곳에 박힌 대못에서 시시때때로 피고름이 터져 나올 때는 숨쉬기조차 힘겹다. 이럴 땐 아는 게 병이요, 모르는 게 약이라는 이야기도 더 이상의 위안이 되지 못한다. 질끈 눈 감는다고 끊어질 악몽이 아니라면, 차라리 눈을 부릅뜨고서 똑바로 쳐다보자. 꿈이라면 이제 그만 깨어나고, 현실이라면 더 이상 피하지 말자고.

'그을린 사랑'(Incendies'2010)은 종교와 이민족 간의 분쟁으로 얼룩진 레바논을 배경으로, 죽음보다 더 절망적인 삶을 이어온 '엄마의 일생'이다. 사랑과 축복 대신에 저주와 생이별 속에서 태어난 첫 아이.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 헤매다가 광란의 와중에 잠시 스쳐간 소녀의 생죽음 앞에서 터져 나오던 오열. 15년간의 수용소 생활, 차라리 죽음이 엄청난 구원인 양 간절하던 세월 속에서도 끝내 삶의 끈을 놓치지 않았던 여인이 안간힘으로 부르던 노래. 그리고 공포와 치욕의 아득한 늪에서 건져 올린 쌍둥이 남매와의 애증이 엇갈린 도피와 동행의 긴 세월. 생의 마지막 불꽃마저 사위어져 가는 즈음에 맞닥뜨린, 우연과 필연이 뒤틀리고 뒤엉킨 만남까지. 그 모든 것들이 탯줄 끊자마자 험한 세상으로 아이 홀로 떠다밀면서 하였던, 엄마로서의 약속 때문이었을 것이다. "꼭 다시 찾겠다"고, "반드시 함께 있어 주겠노라"고.

'1+1=1'. 도대체 알 수 없는 엄마의 유언에 따라, 끝없는 미로를 헤매던 남매의 손에 쥐여진 마지막 수수께끼. 엄마가 지나온 세상은 온통 '2-1=1'이라는 일그러진 뺄셈의 악순환이었단다. 한 하늘 아래서 더불어 살아갈 수 없는 너를 솎아내어야만, 온전한 내가 있을 수 있다는 무지막지한 셈법. 분노와 보복의 악순환으로 '-1'만 자꾸 쌓여 가, 마침내 모든 것이 지워지고야 말 지옥이었어. '1+1=2'라고 굳어버린 손가락으로만 세지 마라. 온기가 도는 손과 손을 마주 잡으면, '너'와 '나'는 단순한 '너와 나'가 아닌, 더 큰 하나인 '우리'가 될 수도 있단다. 꿈속의 넋두리만은 아니다. 2001년 미국의 9'11 테러, 즉각적인 보복과 철저한 응징을 부르짖은 '테러와의 전쟁'의 불길이 휩쓸고 간, 온통 그을린 풍경들을 기억하니? 얼마 전 노르웨이 7'22 대참사, '더 많은 민주주의와 더 많은 개방성, 더 많은 인간애'로 대응하자던 호소가 불러온, 수많은 촛불과 장미로 밝혀진 광경들은 보았니? 죽임과 죽음의 불구덩이로 그을린 상처에 서로 밀쳐내는 뺄셈 혹은 함께 안고 가는 덧셈 중에서 어느 처방을 선택할지는, 온전히 너희들의 몫이구나.

송광익 늘푸른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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