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푸른농촌 희망찾기] 공생발전과 대구경북

지난 7월 말 차관직을 사임하였다. 33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지역을 다니면서 보고 느끼는 농어업의 현주소는 한마디로 '착잡'하다. 농어민의 소득이 저하되고 지역총생산액이 낮기 때문만이 아니다. 타 지방에 비해 대구와 경북 지역이 상대적으로 낙후되었다는 지역민 비판이 거세기 때문이다. 새만금 사업이나 영산강 개발 등에 수조원을 퍼부으면서 대구나 경북 지역에 해준 게 무엇이냐는 지역민의 문제 제기에 시원한 답변을 하기 어려웠다. 대형 국책 사업은 공직자 힘만으로 안 되고 이른바 '정치행정적' 접근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농도 경북의 위상은 어디로 갔을까? 눈높이를 지역에 맞추지 못하고 중앙정부 중심의 정책을 추진한 지난 세월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대구에서 "애들 시집장가 보내기 어렵다"고 하는 친지의 하소연을 들으니 가슴이 멘다. '수도권 공화국'이니 '서울 TK' '지방 TK'라는 신조어로 감정을 자극한다. 인적자원과 물적재원, 권한의 중앙 의존도가 심각한 것은 분명하다. 방치하면 지역 격차 심화로 지역민이 좌절할 것이다. 지역위기는 국가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파리대학의 다니엘 코엔 교수는 우리나라의 급성장 요인은 농지개혁으로 불평등을 해소한 점과 한국전쟁 이후 평등 사회 기반이 구축되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평등의식은 경제와 사회발전의 토대가 된다. 우리 정서에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게 있다. 가난해도 공평한 것이 좋다는 다소 잘못된 정서이나 일종의 평등의식과도 연결된다. 중앙도 살고 지방도 사는 새로운 발전 전략이 추진되어야 국민의 배가 안 아플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향후 모델로 '공생발전'(共生發展)을 제시했다. 상생협력, 동반성장, 공정사회, 친서민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서로 생각하고 보살피며 따뜻한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이다. 시기적으로 적절한 조치이나, 공생발전에 지역 균형발전을 강조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뿐 아니라 지역 간, 산업 간 격차도 심화되어 양극화 현상이 심각하다. 이대로 두면 분열과 대립이 커질 수 있고 지역 격차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 6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G20 농업장관회의에서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자본주의 체제의 재조정' 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시장일변도 정책에 대한 적절한 규제를 강조했다. "규제 없는 시장은 시장이 아니다"고 하였다. 자본주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무역자유화 일변도 정책이 가져오는 부작용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극단적 자본주의 정책이 가져오는 폐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거대자본의 횡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나친 외국자본 의존형 주식시장으로 하루아침에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국내경제가 휘청거린다. 외환위기 이후 30대 그룹 중 17개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잘나가는 기업도 소멸하는구나'라는 점을 실감한다. '탐욕 자본주의' '약탈 경영체제' 가 지속되면 기업도 정부도 사회도 공멸할 우려가 있다. 기존 체제의 부정적 영향을 시정하고 새로운 단계로 전환해야 함은 분명하다.

공생발전은 중앙과 지방, 도시와 농어촌의 균형발전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 '지방이 없는 중앙'이나 '농촌이 없는 도시'를 상상하기 어렵다. 도시와 농촌이 하나라는 농도불이(農都不二)와 몸이 흙과 같다는 신토불이(身土不二) 개념은 우리 사회의 지지기반이다. 필자는 '대구와 경북은 하나'라는 이른바 '대경불이'(大慶不二)를 수차 강조했다. 농어업 생산지라 할 수 있는 경북과 도시 소비지라 할 수 있는 대구는 하나라는 인식을 해야 서로가 윈윈하기 때문이다.

지역 균형발전은 선진국 진입의 기반이 된다. 선진국은 농어촌과 도시민의 삶의 질에 차이가 없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사이먼 쿠즈네츠도 농업과 농촌 발전 없이 중진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등 세계를 주도하는 강국은 다 농업강국이고 도농 간 균형발전이 이루어진 나라이다. 우리 농어촌 공간도 이제 농어민의 '일터'에서 국민의 '삶터'로 변해간다. 이른바 국민의 '공생공간'인 것이다. 변화에 알맞은 새로운 개발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중앙중심의 사고방식과 개발전략을 지역중심으로 전환해야 공생발전도 이루어진다. 지역 자주의식을 바탕으로 단계적이고 치밀한 장단기 전략을 세워야 한다. 예산을 확보하고, 중앙과 지역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지역 언론과 여론 주도층의 협조를 끌어내야 한다. 공생발전을 위해 대구와 경북 지역민이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김재수(전 농림수산식품부 제1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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