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용복의 지구촌 모험] <7> 모로코 무슬림 전통시장 '수크'

반경 2㎞ 도시에 골목 길이 70㎞ 迷路속 환상쇼핑 홀린듯 지갑 열어

사막을 휘젓고 다니던 베르베르인들의 후손다운 말 댄스 공연.

페즈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염색작업은 모든 공정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모로코의 무슬림 전통시장인 '수크'. 수공예품, 가죽제품, 카펫, 공예품 등 온갖 제품들로 가득하다.

제마 엘 프나 광장을 지나 골목길로 접어들면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진 무슬림 전통시장인 '수크'가 있다. 마라케시 지역에서 생산되는 수공예품, 가죽제품, 카펫, 공예품과 온갖 종류의 향신료, 견과류, 유명 브랜드의 모조품까지 없는 것이 없다. 특히 수공예품들은 최고의 제품으로 인정받아 유럽의 유명 디자이너들이 많이 구입한다고 한다. 좁은 골목길을 사람, 오토바이, 당나귀가 뒤엉켜 다닌다. 점포를 지키는 사람은 모두 남자들인 것이 아랍 국가임을 알 수 있다.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물품들 때문에 원치 않은 지출을 하게 되는 곳이다.

◆매일 음악'춤판…축제 일상화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는 많은 공연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넓은 평지에 몇 개의 천막이 원형으로 둘러쳐져 있고, 가운데 평지에선 기마술을 뽐내는 말 댄스 공연이 한창이다. 사막을 휘젓고 다니던 베르베르인들의 후손 답게 말을 다루는 솜씨가 일품이다. 천막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들을 위해 과일 등 음식을 큰 접시에 담아 나르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분주하다. 아마도 세계에서 제일 큰 쇼 극장이 아닐까. 모로코의 고전 무용, 음악, 악기 모든 것이 이 속에 있다. 북을 치는 연주자는 가죽으로 만든 북이 너무 추우면 좋은 소리를 못 내는지 장작불에 자주 쬐어준다. 바이올린도 등장했지만 켜는 방식은 완전히 모로코 식이다. 역사적인 사건을 재현한 말 기병대의 공연이 끝나고 폭죽으로 축제를 마감한다.

마라케시는 마치 축제를 위해 태어난 도시 같다. 관광객들에게 축제는 하나의 볼거리가 되지만 마라케시에서 축제는 그저 일상의 삶에 불과하다. 그만큼 이곳에는 도시 광장을 중심으로 매일같이 춤과 음악이 함께 어우러지는 행사와 축제가 열리고 관광객은 물론 수많은 모로코인들로 마치 우리나라의 옛 장터를 방불케 한다. 마라케시 광장에 모여든 그들의 축제만 보고 있어도 마라케시에서 살아가는 이들 전부를 만난 것이나 다름없다.

◆모로코의 뛰어난 염색기술

모로코는 예로부터 염색기술이 뛰어났다. 모로코의 특산품이라 할 수 있는 가죽제품의 염색 공정작업이 모로코의 옛 수도, 페즈 지역에서 행해져 왔다. 모두 수공으로 하는 세계 최고 품질의 모로코 가죽 원단을 생산하는 곳이다. 페즈의 가죽 제품이 세계 최고인 것은 모든 공정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원료 또한 오직 자연에서 생산되는 것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양과 소를 잡아 가죽을 벗긴 다음 비둘기의 배설물로 털을 제거하고 독특한 색깔의 염색용 수조에서 염색, 그늘과 햇볕에서 건조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수백년간 이어왔다. 각종 혼합물과 가죽의 부패로 악취가 심하지만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가죽 염색 과정은 이색적이다.

이곳을 찾아가기 위해선 세계 최대의 골목을 지나야 한다. 좁은 골목들이 사방으로 이어져 작은 골목들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수가 늘어나 걸음을 옮길수록 점점 더 깊은 미로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을 느낀다. 도시의 반경은 2㎞에 불과하지만 골목의 길이는 70㎞가 된다고 하니 세계 최대의 골목이라 할 만하다.

여러 민족의 침략과 빈번한 전쟁으로 재산과 목숨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만이 알 수 있는 길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미로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외국인들이 많아서인지 길 안내를 부업으로 하는 소년들도 있다.

◆베두인족 마을, 조건없는 친절

가죽으로 대표되는 페즈인 만큼 골목이나 가정집 곳곳에는 공예품을 비롯한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아마 가죽으로 만들 수 있는 물건은 모두 다 있는 것 같다. 독특하고 섬세한 문양과 세련된 디자인을 갖고 있으면서 가격은 저렴한 편이라 방문객들의 지갑을 수시로 열게 만든다.

카사블랑카로 돌아가는 길에 점심 식사를 해결할 겸 베두인족의 마을에 잠시 들렀다. 말이 마을이지 허허벌판에 흙으로 지어진 몇 채의 집이 전부다. 마을 입구 공동 우물에는 늙은 베두인 여인 2명이 양가죽을 씻고 있다. 넓은 평지에 인적도 드문 이곳에서 이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양이나 오리, 닭 같은 가축을 키워 고기와 가죽을 파는 것이 수입의 전부다. 집 앞마다 밀가루 빵을 구워먹기 위해 흙으로 만든 화덕에는 아궁이마다 타다 남은 장작들이 남아 있고, 땔감을 모아놓은 장작더미에서 이들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어린아이를 업고 있는 베두인 여인에게 조심스레 닭을 1마리 잡아줄 수 있는지 부탁을 했더니 두 말 없이 '오케이'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지금은 21세에 엄마가 된 딸, 손녀 2명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사위는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가고, 혼자서 딸과 손녀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 셈이다. 너무도 정성스레 푹 곤 닭요리를 대접하기에 5달러를 더 쥐여주었더니 한사코 받지 않겠다고 손사래를 친다. 그 마음이 고마워 억지로 손에 쥐여주니 손수 만든 노란 겉싸개를 두 개나 선물로 준다. 원래 손님 대접을 잘 하는 것이 베두인족의 전통이라지만 이 여인의 마음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여행을 하며 무엇보다 오래 남는 것은, 삶은 어렵지만 마음만은 부자인 이들과 사람 냄새나는 추억들이다. 여행은 고행의 다른 말이라고도 한다. 힘든 여행을 계속하는 것도 나와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 가고 있는 이들에게 받은 정 때문이리라.

글'사진 도용복 대구예술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