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금이 묘 못 쓰게 한 명당 아름드리 솔숲 천년 '기품'

경남 봉명산 다솔사

다솔사 소나무 숲길. 솔 향기 가득한 길을 걷다 보면 몸과 마음이 청량해지는 기분이 든다.
다솔사 소나무 숲길. 솔 향기 가득한 길을 걷다 보면 몸과 마음이 청량해지는 기분이 든다.
봉명산 일대가 명당으로 알려지면서 묘를 쓰려는 세도가가 나타나자 임금이 명을 내려 묘를 쓰지 못하도록 한
봉명산 일대가 명당으로 알려지면서 묘를 쓰려는 세도가가 나타나자 임금이 명을 내려 묘를 쓰지 못하도록 한 '어금혈봉표'.
다솔사 적멸보궁. 중앙에 와불을 모시고 그 뒤로 투명한 창을 내어 바깥 사리탑이 보이도록 한 것이 특이하다.
다솔사 적멸보궁. 중앙에 와불을 모시고 그 뒤로 투명한 창을 내어 바깥 사리탑이 보이도록 한 것이 특이하다.
만해 한용운이 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하고 소설가 김동리가
만해 한용운이 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하고 소설가 김동리가 '등신불'을 집필한 안심료.

만해 한용운이 독립선언문 초안을 작성한 항일 유적지, 소설가 김동리가 '등신불'을 집필한 창작의 산실, 차 초식지(初植地)로 거론되는 야생차 재배지. 범상치 않은 역사성을 지닌 곳은 경남 사천시 곤양면에 있는 다솔사다. 다솔사는 유서 깊은 내력을 자랑하지만 속세에는 덜 알려졌다. 그 덕분에 아직도 조용한 산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여름의 끝자락, 화려하지 않지만 기품 있는 천년 사찰 다솔사를 다녀왔다.

◆소나무 많은 절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503년(신라 지증왕 4년) 연기조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임진왜란 등을 거치면서 10여 차례 소실된 후 중창됐다. 다솔사는 '봉황이 노래한다'는 봉명산 자락에 있다. 봉황의 혼이 서린 산에 터를 잡은 까닭에 다솔사에서 일을 도모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다솔사가 자리 잡은 땅의 기운이 심상치 않아 이에 얽힌 이야기도 전해온다. 절 바로 아래 언덕길 소나무 숲에는 '어금혈봉표'(御禁穴封表)라는 바윗돌이 있다. 봉명산 일대가 명당으로 알려지면서 묘를 쓰려는 세도가가 나타나자 임금이 명을 내려 묘를 쓰지 못하도록 한 징표다.

'많이 거느린다'(多率)라는 뜻을 지닌 다솔이라는 절 이름도 의미심장하다. 이름에 걸맞게 다솔사에는 딸린 것이 참 많다. 대표적인 것이 소나무다. 사찰 입구부터 펼쳐지는 아름드리 소나무 숲길은 보기만 해도 탄성을 자아낸다. 솔 향기 가득한 길을 걷다 보면 몸과 마음이 청량해지는 기분이 든다. 소나무 길은 두 갈래다. 왼쪽으로 난 길이 옛길이다. 어느 길을 선택하더라도 다솔사에 닿는다. 하지만 차량은 일방통행이다. 차로 다솔사 주차장으로 가려면 새길을 통해 올라가야 한다.

내려올 때는 옛길을 이용해야 한다. 다솔사 솔 숲의 정취를 제대로 만끽하려면 다솔사 입구 휴게소에 차를 세운 뒤 걸어 올라가야 한다. 다솔사까지 거리도 300여m에 불과하기 때문에 걷기에도 무리가 없다.

수백년 동안 다솔사를 지켜온 소나무를 벗 삼아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새 다솔사 주차장이다. 다솔사 주변에는 삼나무'비자나무 등이 빽빽이 우거져 있다. 숲에 가려 주차장에서는 절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주차장 왼쪽 옆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은 신도들에게 설법을 하거나 불구(佛具)를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된 대양루다. 1748년(영조 24)에 세워진 것으로 여러 차례 전란을 겪으면서도 화를 면해 다솔사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대양루 왼쪽으로 난 돌계단을 오르면 적멸보궁이 모습을 드러낸다. 적멸보궁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적멸보궁에는 부처의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 부처님 진신사리로 불상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솔사 적멸보궁은 중앙에 와불을 모시고 그 뒤로 투명한 창을 내어 바깥 사리탑이 보이도록 한 것이 특이하다.

◆역사적 인물의 자취 서려

다솔사는 많은 인재도 거느리고 있다.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다솔사를 승병기지 삼아 의병 활동을 벌였으며 한용운과 김동리의 자취도 서려 있다. 사찰 마당 오른쪽에 있는 건물은 안심료다. 한용운 선생이 12년간 은거하면서 항일비밀결사단체인 만당을 조직하고 독립선언문 초안을 작성한 곳이다. 안심료 앞에는 한용운 선생의 회갑 기념으로 독립운동가들이 심었다는 황금편백 세 그루가 남아 있다. 또 김동리 선생은 안심료에서 '등신불'을 집필했다. 인걸은 가고 없지만 한용운과 김동리 선생의 사진이 남아 그들의 자취를 대변해 주고 있다.

다솔사는 많은 야생차도 거느리고 있다. 적멸보궁 뒤편 야산은 차나무 밭이다. 200, 300년은 족히 됐을 법한 야생 차나무가 다솔사를 감싸고 있다. 하지만 눈으로 차나무를 찾기가 쉽지 않다.

다솔사 차밭은 야생 그대로다. 인위적으로 가꾸지 않는다. 그래서 차나무와 잡초가 같이 자란다. 잡초에 가려 차나무가 잘 보이지 않는다. 막 키운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연 그대로를 고집하는 멋이 깃들여 있다. 잡초 덕을 본 적도 있다. 지난해 다솔사 인근 지역 차나무가 냉해 피해를 입었을 때 다솔사 차나무는 멀쩡했다고 한다. 잡초가 냉해를 막아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다솔사는 호젓한 기분을 만끽하기에 제격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작고 아담한 천년 고찰에서는 기품이 느껴지고 사천왕'일주문이 없어 편안한 절집이란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고즈넉하다. 특히 사찰 주변에 상업시설을 들이지 않아 상술로 얼룩진 사찰 앞 풍경을 찾아볼 수 없어 더욱 정감이 간다.

◆주변 볼거리

다솔사에서 원전마을을 지나 북쪽으로 8㎞ 정도 가면 세종과 단종의 태(胎)가 안치된 세종태실지와 단종태실지가 나온다. 다솔사에서 남해고속도로 곤양IC를 지나 남쪽으로 8㎞가량을 가면 별주부전의 무대로 알려진 비토섬이 있다.

비토섬은 토끼섬'거북이섬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비토교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사천은 우리나라 항공과학의 메카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대표적 항공기 제작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사천에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에서 운영하는 항공우주박물관은 어린이들에게 우주로 향한 꿈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055)851-6565.

글'사진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Tip

다솔사는 상업시설이 없는 조용한 사찰이라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다. 다솔사 입구에 산채비빔밥 등을 판매하는 휴게소가 한 곳 있을 뿐이다. 대구에서 다솔사 가는길:중부내륙고속도로(구마고속도로)~칠원분기점 남해고속도로 진주'함안 방면~곤양IC~58번 지방도 곤양 방면 우회전 한 뒤 6㎞ 정도 가면 다솔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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