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영재의 행복칼럼] 기다림

종로 YMCA 지하 다방, 약속 시간이 많이 남아 그 다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한 여자 대학생이 눈에 띄었다.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 앉아 있다. 흰 블라우스 상의에 머리는 약간 긴 단발을 하고 있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둥근 편이다.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청순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내가 왜 그녀를 이렇게 오래 보고 있는지 까닭을 잘 모른다. 처음에는 눈에 띄니까 바라보았지만 계속 보고 있는 것은 호감을 느껴서 보는 걸까? 아님 호기심에서일까? 아무튼 계속 보고 있다.

그녀는 차도 시키지를 않고 주위를 돌아보지도 않는다. 엽차도 마시지 않는다. 나처럼 시간을 죽이러 온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공허한 마음 달래려고 온 것 같지도 않다. 풍기는 분위기도 그렇거니와 가끔은 그녀가 다방의 입구 쪽을 쳐다볼 때가 있으므로 누구를 기다리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녀는 연인을 만나기 위해 기다릴 것이라고 가정해 본다.

언제가 어느 목사님에게 물은 적이 있다. "목사님 왜 하나님은 인간을 남녀로 나눠 만들어 우리에게 고통을 주십니까? 남자끼리만 살든지 아니면 여자끼리만 살면 최소한 사랑 때문에 겪는 인간의 고통은 없었을 것이 아닌가요?"라고. 목사님은 "그런 어려운 질문은 난제라고 하죠. 난제는 수학의 공리와 같은 거요. 그러니 풀려고 하지 마세요"라고 대답했다.

내가 지금 풀려고 하는 의문은 난제일까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어 머리가 아프다. 하여간 빨리 누군가가 나타나야 된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아직도 오지 않고 있다. 시계를 보니 내가 그녀를 관찰한 시간만으로도 한 시간 반이 지났다.

나의 약속 시간이 다가와 YMCA 지하 다방을 나온다. 그녀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그 기다림이 대상이 없든, 사람이든 관계없이 그것은 다 행복을 기다리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남자와 만나 즐거운 일요일을 보내자고 하는 것도 행복을 위한 기다림이요. 아니면 그저 앉아 있다고 해도 그것이 바로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한 행위이면 그 역시 행복을 추구하는 행동일 것이다. 이윽고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늦게 나온 것에 대한 짜증을 좀 낸 뒤 이내 좋아서 깔깔거리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또 한편으로는 결국 아무도 오지 않고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그녀도 상상해 보았다. 좋아하는 이를 만나는 것이 행복일까? 아니면 영원히 기다리는 것이 행복일까? 긴 세월이 지나갔지만 아직도 그 난제를 나는 풀지 못하고 있다.

권영재 미주병원 진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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