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극 맛있게 먹기] 연극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 (3) 대본작업

시놉시스 바탕으로 초고 완성…공연연습 중에도 수정

연극의 제작과정 편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한 편의 연극을 만들 때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시작하는 작업은 작품선정이다. 그런데 이미 공연된 적이 있는 작품이 아니라 창작초연을 준비하는 제작자는 두 가지의 경우 중 한 가지를 선택하게 된다. 이미 완성된 대본이지만 아직 공연이 되지 않은 작품을 고르거나 새로운 대본을 쓸 작가를 선정해 대본 청탁을 하는 것이다. 창작초연작에 가산점을 주는 각종 지원금 공모사업에 신청하기 위해 혹은 자기 극단만의 새로운 레퍼토리를 발굴하고자 하는 다수의 극단에서는 후자의 경우를 선택한다. 이는 둘 다 지금껏 공연된 적이 없는 창작초연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작품의 기획 단계부터 제작자, 연출, 작가가 함께하는 것이 극단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쉽고 배우, 스태프, 극장 문제 등의 현실적인 상황에 대처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 대본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는 걸까?

연극의 대본은 누가 뭐라고 해도 극작가 고유의 영역이다.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는 것이 배우의 몫인 것처럼 희곡을 완성하는 것은 작가의 신성한 의무이자 자신의 세계관을 펼칠 수 있는 발언대이며 그 어느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작가의 강력한 권리이다. 물론 이는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하기는 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제작자가 창작초연작을 공연하기 위해 작가를 선정해 청탁을 한 경우에는 작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자신의 세계관을 맘껏 펼치기는 어렵다. 작가가 대본을 쓴다는 것에는 변화가 없겠지만 일종의 공동작업 성격이 강해지기 때문에 제작자나 연출가와 회의를 거친 후 모두의 의견을 수렴해 작품을 쓰게 된다. 물론 제작자가 생각하는 작품의 주제와 소재가 분명하게 정해진 경우에 한해서다. 특정 소재나 주제 등에 얽매이지 않게 전적으로 작가에게 맡기는 경우와는 상황이 다르다. 아무튼 기획 단계에서의 회의는 대본을 쓰는 과정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결정적 순간이다. 그러한 과정을 거친 후, 작가는 다시 작가라는 역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수많은 활자들과 인물들 사이에서 외로운 승부를 펼쳐나가게 된다.

작가는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쓰든 주제와 소재가 정해진 상태에서 청탁을 받든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갈 때에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비슷한 극작과정을 거치게 된다. 먼저, 기획의도 혹은 작품의도를 생각해서 정리한다. 다음으로 그러한 생각들을 잘 압축해서 정리한 '시놉시스'(synopsis)를 작성한다. 시놉시스에는 작품의 제목, 주제, 소재, 인물, 구성, 작품의 형식 등이 담겨 있는데 대본을 건축물이라고 본다면 시놉시스는 건축물의 설계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단막극의 경우에는 시놉시스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90분 내외의 공연용 장막극을 쓰는 경우에는 반드시 시놉시스를 작성해야 한다. 시놉시스를 작성하지 않으면 작품의 진행이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반드시 시놉시스를 작성해서 이를 바탕으로 하여 초고를 완성한다. 그리고 초고가 완성된 상태에서 다시 제작자, 연출가 등이 함께 모여 회의를 한 후에 이를 다시 수차례 수정한다. 그런 후에야 드디어 배우와 연출이 함께 모여 연습할 수 있는 대본을 완성하게 된다. 하지만 공연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회의과정이 생략될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고통스런 모든 극작과정을 혼자 감내하게 되는데 숱한 회의과정을 겪다 보면 여러 가지 의견충돌로 인해 차라리 혼자 고통을 감내하고 책임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이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대본은 작가의 손을 떠나 배우와 연출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하지만 작가의 역할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세상을 떠난 작가가 아니라면 공연연습 과정 중에도 작가의 역할은 계속된다. 제작자, 배우, 연출 등의 요구나 연습과정 중에 떠오른 작가의 새로운 아이디어 혹은 현실적 상황 등 여러 변수에 따라 작가는 다시 대본을 추가로 수정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대본을 제작자에게 넘기는 시점이 본격적인 극작의 시작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게 대본을 고쳐 쓰는 과정은 공연의 막이 오른 후에도 끝나지 않는다. 재공연이 될 때에도 마찬가지다. 대본작업은 그렇게 수없이 고쳐 쓰는 일 때문에 힘든 것은 분명하지만 하나의 생명체를 탄생시켜 키우는 것처럼 흥미진진한 일이기도 하다.

안희철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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