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막바지, 대구의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202개국 2천여 명의 선수들이 뿜어내는 열정과 투지는 물론이고 70억 세계인의 시선이 달구벌에 쏠렸기 때문이다. 이번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로 우리나라는 하계올림픽, 월드컵대회와 세계육상선수권 3대 제전을 휩쓰는 세계 7번째 트리플 크라운(Triple Crown) 국가가 됐다.
절로 어깨가 으쓱해진다. 물론 대회가 열리기 전에는 여러 가지 걱정들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육상이 야구나 축구처럼 열광적 지지를 받는 종목이 아니다보니까 자칫 분위기가 냉담할까 우려했지만, 대구 시민들은 기대 이상의 단결력과 역량을 보여줘 모두를 흐뭇하게 했다.
통쾌한 승부로 국민들의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주었다.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부르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인간한계에 도전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기적 같은 이야기 속에도 진한 사람 냄새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관객 수 100만을 동원한 영화가 제 아무리 감동적이어도 논픽션의 인간승리 드라마와는 비교가 안 된다.
이날을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밤낮 없이 달리고 또 달렸을까.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쏟아냈을까. 대회는 끝이 났지만 또 어떤 숨은 이야기들이 탄생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승리와 좌절이 교차하는 가운데 눈부신 기록과 훈훈한 이야기들이 달구벌을 가득 메웠다.
대회가 열리고 있는 대구의 옛 이름은 달구벌(達句伐)이다. 산이 있는 평야라는 뜻인데, 이름처럼 평야와 산으로 둘러싸인 대구는 분지답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더운 도시로 꼽혔다. 그러나 최근 십 수년 사이 대구의 여름철 도심 최고기온이 평균 1.2℃가량 떨어진 반면 다른 도시들은 1∼2도 높아졌다. 그 비결은 도심을 가득 채우고 있는 푸른 가로수이다. 1996년 시작한 도심 가로수 심기가 차츰 가시적인 효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외국선수들에게 대구의 더위는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1983년 제1회 헬싱키 대회 때부터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줄곧 8월에 열렸다. 대구까지 총 13번의 대회 가운데 9번이 8월에 집중됐고, 대구를 포함해 총 4번의 대회가 8월 말과 9월 사이에 걸쳐서 열렸다. 이 시기 북반구는 여름철과 맞물릴 수밖에 없는데, 왜 하필 더운 8월인가는 세계 스포츠대회를 독점하다시피하는 대륙이 유럽임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법하다. 몇 해 전 들렀던 8월의 파리는 선선하다 못해 춥기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로마처럼 무더운 도시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우리보다는 덥지 않다.
그러나 대회 첫날인 27일, 뜻밖의 선선한 날씨 때문에 낭패를 본 선수들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볕 무더위를 간절히 기다렸던 우리 마라톤 대표 팀이다. 그동안 우리 선수들은 대구의 한증막 더위에 대비해 훈련을 해 온 데다 당연히 외국 선수들에 비해 고온다습한 날씨에 강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반사이익을 기대해 볼 수 있었다.
이른바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노렸건만 예상 밖의 선선한 날씨는 우리 대표 팀을 당혹스럽게 했고, 이날 여자 마라톤은 저조한 성적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진정한 스포츠 정신은 1등과 꼴찌에게 똑같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데 있다. 승자와 패자의 땀과 눈물은 모두가 값지고 아름다운 것임이 분명하다.
(구미 탑정형외과연합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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