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명절에 '전' 부치는 여자? 우리집도 올해로 땡!

제사상음식 대행업체 주문, 직접 장만보다 오히려 저렴

요즘은 명절을 맞아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서로 눈치 살피며 음식 장만 걱정하기보다는 차례상 대행업체에 주문하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가족끼리 좀 더 유쾌한 시간을 보내는 가정이 늘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요즘은 명절을 맞아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서로 눈치 살피며 음식 장만 걱정하기보다는 차례상 대행업체에 주문하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가족끼리 좀 더 유쾌한 시간을 보내는 가정이 늘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올해는 유난히 추석이 이른데다 지난해에 이은 이상 기온으로 인한 과일값 상승이 이어지면서 유통업체들마다 사과
올해는 유난히 추석이 이른데다 지난해에 이은 이상 기온으로 인한 과일값 상승이 이어지면서 유통업체들마다 사과'배를 대신할 만한 상품 찾기에 부심하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누가 말했던가. 사실 어린이를 제외한 대한민국 대다수 성인들에게 명절은 부담되는 부분이 많다. 차례 비용에, 고향까지 오고가는 교통 체증 걱정, 여자들은 음식 장만하고 집안일까지 감당해야 하는 고통까지 생각하면 미리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정도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명절 풍속도 점차 변화하고 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서로 눈치 살피며 음식 장만 걱정하기보다는 차례상 대행업체에 주문하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가족끼리 좀 더 유쾌한 시간을 보내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덕분에 호텔, 레스토랑 등의 여가산업은 명절 대목을 맞고 있다. 핵가족화가 뚜렸해지면서 아예 가족들끼리만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가정도 늘고 있는 추세다.

◆차례상차림은 대행업체에

김현자(57'여'대구시 북구 태전동) 씨는 지난해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이번 추석 차례상은 차례상 대행업체에 주문하기로 했다. 올 연말 결혼을 앞두고 있는 아들과 예비 며느리에게까지 자신이 겪은 차례상 차리는 노동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다. 8~10인상에 비용은 22만원. 오히려 집에서 장만하는 것보다 비용도 저렴하다. 김 씨는 "며느리와 차례 음식을 하는 문제로 서로 고부갈등을 겪고 싶지 않다"며 "음식 하느라 고생하는 시간에 자녀들과 함께 가까운 곳에 나들이라도 다녀오는 편이 더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라는데 대해 남편도 동의했다"고 했다.

명절문화는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조상들께 올릴 음식은 손수 장만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인 것처럼 인식됐지만 요즘은 '편리함'과 '실리'를 중시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한국제사상차림 정복희 원장은 "몇 년 전만 해도 차례 음식을 주문한다는 사실을 쉬쉬하는 분위기여서 '밤은 치지 말고 통밤으로 달라''직접 전을 부친 것처럼 연출할 수 있도록 가족들이 없는 시간을 틈타 배달해 달라''박스에 업체명이나 배송한 흔적이 보이지 않도록 해달라'는 등의 요구가 꽤 많았지만 요즘은 상당히 당당해진 분위기"라고 했다. 또 예전에는 직접 찾아와 음식을 확인하고 주문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반면, 지금은 주문하는 연령대도 젊은 사람들부터 노년층까지 다양해졌으며 인터넷이나 전화로 주문이 이뤄지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했다.

특히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는 대행업체를 이용하는 편이 직접 음식을 장만하는 것보다 비용도 훨씬 절약할 수 있다. 전문업체에서는 과일과 나물, 조기 등의 재료를 대량 구매하는데다 과일의 경우 연간 필요한 물량을 계약을 통해 미리 확보하는 경우도 많아 날씨 등의 요인으로 인한 가격 변동 폭도 적은 편이다.

정 원장은 "올 추석에는 사과와 배 가격이 예년에 비해 2배 이상 비싼 편이지만 미리 농가와 계약을 했기 때문에 질 좋은 상품을 싼 가격에 확보했다"고 했다.

명절 때마다 들려오는 이야기가 며느리들의 '명절증후군'이었지만 요즘은 시어머니들의 '명절증후군'도 심각하다. 며느리 눈치를 살피느라 음식 장만은 도맡아 해야하는데다, 이것저것 챙겨달라는 며느리의 애교섞인 목소리를 모른 체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모(62'여) 씨는 "요즘은 다들 맞벌이를 하다보니 며느리한테 제사 준비를 하라고 떠밀 수도 없는 형편"이라며 "그랬다가는 아들만 시달릴 게 뻔한테 차라리 내 몸 힘든 게 낫지 않겠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박모(58'여) 씨의 며느리는 아예 한 술 더 뜬다. 박 씨는 "우리 며느리는 집에만 오면 냉장고를 뒤져 이것저것 찬거리를 싸달라고 하는데 생글생글 웃으며 매달리니 외면할 수도 없다"며 "아이들이 온다고 하면 반찬 준비하는 일이 고되 요즘은 '자주 오지 않았으면'하는 마음마저 들 정도"라고 했다.

◆외식업체는 명절이 대목

호텔, 레저, 외식 등 여가산업은 추석이 대목이다. 예전에는 너도나도 고향을 찾고, 집에는 차례음식이 넘쳐나다보니 명절이 매출이 줄어드는 시기였지만 요즘은 밀려드는 손님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지경이 된 것. 대구 수성구의 한 레스토랑은 "추석 당일만 빼고는 다 문을 연다"고 했다. 예약이 밀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레스토랑 관계자는 "예전에는 명절에 친구들과 어울리는 젊은이들이 고객의 대다수였지만 요즘은 가족단위 고객이 급증했다"며 "차례 음식을 주문으로 해결하고 오랜만에 얼굴을 본 가족들끼리 외식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런 변화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이 같은 변화에 따라 아예 외식업계는 추석을 맞아 각종 할인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대목인 만큼 확실한 매출증대를 꾀하기 위해서다. 외식 전문 기업 썬앳푸드는 이달 8일부터 15일까지 멤버십 고객에게 썬앳푸드 8개 브랜드에서 이용할 수 있는 추석 쿠폰을 증정한다. 매드 포 갈릭은 고르곤졸라 피자를, 토니로마스는 핫페퍼 시푸드 라이스를, 스파게띠아는 날치알 그라탕 등을 공짜로 먹을 수 있다.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는 아예 추석연휴 동안 문을 닫지 않는다. 추석 당일에는 아웃백 신한카드 결제 때 40% 할인해 준다.

호텔업계도 추석을 반기고 있다. 이번 명절처럼 연휴기간이 짧아 해외여행을 떠나기 부담스럽다보니 가까운 국내 여행을 택하는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노보텔 대구시티센터의 경우 명절을 맞아 고향을 방문하는 가족들을 겨냥해 추석용 객실 패키지를 선보였다. 저렴한 가격에 4인 가족 숙박과 조식을 즐길 수 있다. 호텔인터불고는 명절 연휴 동안 호텔 내 뷔페나 식당 이용 고객이 평소에 비해 30% 이상 증가한다고 밝혔다. 연휴를 맞아 가족 단위로 식사를 즐기는 손님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예 귀성객들로 한결 여유로워진 서울로 호텔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호텔들은 단순히 객실을 할인해 주는 서비스를 떠나 영화나 스파, 공연, 전시회 등의 관람 기회를 제공하며 서비스의 범위를 다양화하고 있다. 싱글족인 최다영(37'여) 씨는 "명절 때만 되면 '왜 시집 안 가느냐'는 친지들의 성화에 시달리기 싫어 해외여행을 떠났는데, 올해는 연휴 기간이 짧아 서울 호텔을 예약해 두고 있다"며 "스파와 피부마사지, 영화쿠폰 등이 포함돼 있어 혼자 재충전 시간을 갖는데 안성맞춤"이라고 했다.

◆과일값 상승에 선물 다변화

매년 명절이면 지인들에게 과일세트를 선물해온 중소기업 사장 박모(61) 씨는 이번 추석에는 선물 때문에 몇 날을 고민해야 했다. 과일만큼 폼 나면서 가격은 저렴한 선물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박 씨는 "매년 5만원 안쪽에서 선물세트를 구매해 왔지만 올해는 7만~8만원 이상을 줘야하다보니 부담이 만만찮다"며 "그렇다고 마땅히 대신할 선물을 찾기도 어렵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올해는 유난히 추석이 이른데다 지난해에 이어 이상 기온으로 인한 과일값 상승이 이어지는데다, 수산물마저 어획량이 줄면서 추석 선물 패턴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4만, 5만원대에서 가장 부담없이 할 수 있었던 선물이었던 사과'배를 대신할 만한 상품 찾기에 유통업체들도 머리를 싸매고 있는 것.

이 때문에 예전에는 선물 목록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각종 이색 제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소금, 건과일, 장류, 머그잔 등 별의별 선물들이 선보이고 있는 것. 현대백화점은 히말라야 명품 소금과 프리미엄 고추장을 추석 선물로 내놓았고, 이마트에서는 냉동 반건시와 미국산 건블루베리와 건자두를, 동아백화점은 머그잔과 타월, 피크닉용품 등의 세트를 마련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른 추석에 이상 기온으로 올 추석은 유통업체나 선물을 준비하는 이들 모두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먹거리를 제외한 추석 선물상품이 올해처럼 많이 등장한 것은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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