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불세출 투수' 최동원, 영원한 하늘의 별이 되다

암투병 53세 별세

프로야구 롯데의 에이스 최동원은 1988년 시즌 후 삼성의 간판투수였던 김시진과 맞트레이드되면서 삼성 유니폼을 입게 됐다. 현역시절 삼성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역투하는 최동원. 삼성 라이온즈 제공
프로야구 롯데의 에이스 최동원은 1988년 시즌 후 삼성의 간판투수였던 김시진과 맞트레이드되면서 삼성 유니폼을 입게 됐다. 현역시절 삼성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역투하는 최동원. 삼성 라이온즈 제공

암 투병 끝에 53세의 일기로 14일 별세한 최동원은 프로야구 30년을 밝힌 '별 중의 별'이었다. 앞서 이달 7일 별세한 삼성 라이온즈 장효조 2군 감독이 평균타율 0.331을 남기며 타석을 지배했다면 최동원은 역동적인 투구 자세에서 뿜어 나오는 시속 150㎞를 넘는 직구와 낙차 큰 커브를 앞세워 타자들을 요리했던 마운드의 지배자였다.

1983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 이듬해 삼성과 맞붙은 한국시리즈에서 그가 보여준 승부사 기질은 프로야구사에 오래 기억되고 있다. 그해 한국시리즈 5경기에서 혼자 4승(1패)을 책임지며 롯데에 우승컵을 안긴 일은 당시 에이스에 대한 의존도가 심했던 프로야구 풍토와 맞물려 앞으로 '무쇠팔'을 자처하는 많은 투수들이 배출되더라도 영원히 깨지지 않을 불멸의 기록이다.

고인은 경남고 재학시절이던 1976년 군산상고와의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승자 결승에서 당시 기록으로는 전국대회 최다 탈삼진(20개)을 작성하며 팀의 9대1 대승을 이끌어 주목받았다. 연세대를 거쳐 1981년 실업야구 롯데에 입단해서는 그해 17승1패라는 빼어난 성적을 올리며 최우수선수'최우수 신인'최다승리투수 등 투수 부문 3관왕을 독차지했다.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는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해 한국의 우승에 힘을 보탰다. 1981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로부터 계약금 61만달러를 받는 조건에 계약을 마쳤을 정도로 그는 세계가 인정한 투수였다.

1983년 프로 데뷔 첫해 9승16패4세이브, 평균자책점 2.89로 눈에 띄는 성적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1984년 51경기에서 14차례나 완투하며 27승13패6세이브, 평균자책점 2.40을 기록하며 무쇠팔 최동원의 탄생을 알렸다. 그해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1'3'5'6'7차전 등 5차례나 등판했고 1'3'7차전에서 모두 완투승(1차전 완봉승)을 거두는 투혼을 발휘하며 불멸의 역사를 썼다.

1986년과 1987년에는 세기의 대결로 관심을 모은 선동열(당시 해태)과의 세 차례에 걸친 선발 대결에서 1승1무1패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던 고인은 현재 프로야구선수협회의 모태 격인 선수회 창립을 주도해 롯데의 미움을 샀고, 1988년 11월 삼성의 간판투수였던 김시진과 맞트레이드되면서 삼성 유니폼을 입게 됐다.

야구에 흥미를 잃은 그는 1989년 후반기에서야 삼성에 복귀해 8경기에서 1승2패의 초라한 성적을 냈고, 이듬해 6승5패1세이브를 거둔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프로 통산 8년 동안 103승74패26세이브, 평균자책점 2.46의 기록을 남겼다.

은퇴 후 한화 코치와 방송해설가, KBO 경기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했으나 2007년 갑작스럽게 찾아온 대장암 때문에 야구인으로서의 생활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고인은 마지막으로 희망했던 고향 팀 감독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팬들과 작별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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