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개·고양이 긴급구조 "119 출동 않습니다"

9일부터 개정법 시행…일부 시민 아직 전화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13일 오후, 대구시 소방안전본부 119 종합상황실에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왔다. 애완 고양이가 나무 위에 올라간 지 30분이 지나도록 내려오지 않는다는 정모(17) 군의 신고 전화. 예전 같으면 119구조대가 출동했겠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이달 9일부터 응급상황이 아닌 애완동물 구조를 위해 119구조대가 출동하지 않도록 관련 법률이 바뀌었기 때문.

소방 공무원이 개정된 구조 관련 지침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지만 정 군은 "예전엔 별말 없이 출동했는데 지금은 왜 안 되냐?"며 10여분 이상 따졌다. 당시 신고를 받았던 소방공무원은 "현장에 출동하면 적어도 30분 이상 걸리고, 그 사이 화재라도 나면 큰일이라서 시민들의 양해를 구하고 있지만 막무가내인 경우도 많다"며 "이런 전화 2, 3통만 받고 나면 진이 다 빠진다"고 푸념했다.

9일부터 애완동물 구조나 주택 문 개방 요청 등 민원성 신고 접수시 이를 거부할 수 있게 한 '119 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실시됐지만 여전히 관련 신고가 끊이지 않아 소방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소방당국은 변경된 지침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시민들이 적잖다.

소방방재청은 ▷출입문 개방 요청 ▷시설물에 대한 안전 조치 및 장애물 제거 ▷동물의 포획'구조 ▷주민 생활 불편 해소 등의 신고는 거절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시행했다.

그러나 여전히 동물 구조 등 민원성 신고는 하루 10여 건씩 꾸준히 접수되고 있다. 이는 올해 화재로 인한 출동 5.7건(하루 평균)의 두 배에 이르는 신고 건수다.

문제는 정작 응급 사태가 벌어졌을 때엔 사람이 없어 아찔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는 것. 지난달 1일 오후 동부소방서 119구조대는 유기견 구조 신고를 받고 동구 검사동 주택가에 출동했다. 그러나 구조대가 유기견 구조 현장에 도착한 지 불과 몇 분 뒤 동구 신암동 한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때문에 관할도 아닌 북부소방서 119구조대가 화재 현장에 대신 출동해야 했고, 현장 도착시간이 늦어지기도 했다.

대구 소방안전본부는 동물 구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인 만큼 긴급하지 않은 민원성 신고에 따른 출동은 자제하겠다는 입장이다.

소방본부 관계자는 "시행령 개정으로 민원성 신고에 출동을 거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지만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계속 신고하고 있다"며 "동물 구조 요청은 동물협회 전화로 해달라"고 주문했다.

백경열기자 b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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