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을 일순간 아노미 상태로 몰아넣은 '안철수 바람'은 여야 대선주자들에게 강력한 충격파를 안겨주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가능성을 일단 부인했지만 정치권에서는 그를 여전히 잠재적인 대선 후보로 분류한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버금가는 지지율을 보이는 안 원장의 등장은 이들에게 초비상 사태임에 틀림없다. 기성 정치권에 반감 내지 혐오감을 가진 국민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지만 기존 정치판을 발판으로 대업을 이루겠다고 나선 이들에게는 근본적인 궤도 수정을 강요할 정도의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금 아팠지만 예방주사"…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맨 먼저 3년여 한 번도 선두를 내주지 않고 여론 선두를 달려온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입은 충격이 가장 컸다는 것이 정설이다. 안 원장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불출마 선언이 오히려 대선 출마 가능성 부각이라는 현상을 낳은 탓이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처음으로 박 전 대표보다 근소하지만 앞서는 결과도 나와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안 원장은 '박근혜 대세론'을 위협하는 유일한 존재가 됐다.
친박계 내에서도 겉으로는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들 사이에서도 '박 전 대표가 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유행어가 됐다. 박 전 대표의 추석 이후 행보를 더 빠르게 하는 효과도 발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달라지지 않으면 꺾일 수도 있다'거나 '한 번 꺾이면 회복하기 힘들다'는 위기감도 보인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선 "이번 안철수 바람이 박 전 대표에겐 적절한 시기에 예방주사가 됐다"는 긍정적 관측도 나온다. "안풍(安風)에 그나마 버텨낸 것은 박 전 대표밖에 없다"는 얘기도 같은 맥락이다. 안 원장의 상승세가 일단 주춤하고 서울시장 후보 여론조사에서처럼 박 전 대표를 확실하게 압도하지 못하는 것도 친박계를 안도케 하는 대목이다. 추석 이후 박 전 대표가 전열을 정비해 나간다면 더 강력한 대세론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친박계에서는 나온다. 물론 일말의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야권의 대선주자들
야권의 대선주자들은 타격이 더 컸다. 안 원장이 '반(反)한나라당' 성향을 보인데다 안 원장이 지지를 선언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친야 성향을 뚜렷이 했기 때문이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등은 일제히 지지율 대폭 하락세를 보였다.
특히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던 문재인 이사장의 지지율이 급락했다. 15% 가깝게 치솟던 문 이사장의 지지율은 5%대로 주저앉았다. 부산 출신인 안 원장과 경남 출신인 문 이사장이 PK라는 지역적 기반과 지지층이 상당히 겹치기 때문으로 보인다. 문 이사장은 대선 후보 반열에서 야권 통합의 조타수 역할로 비중이 축소되는 느낌마저 주고 있다.
손학규 대표 역시 리더십의 시험대에 올랐다고 할 만큼 지지율 하락과 더불어 리더십에 대한 위기를 맞고 있다. '균형'으로 대표됐던 '손학규 리더십'은 '안철수 리더십'에 묻혀 버렸다. 한명숙 전 총리가 서울시장 선거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써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까지 발생하자 손 대표는 더욱 궁지로 몰리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손학규-문재인' 양강 체제였던 야권의 대선주자 구도는 1강(안철수), 2중(손학규, 문재인)으로 재편되고 있다. 정동영'정세균 최고위원 등은 여론조사에서 이름이 사라지는 상황까지 직면했다.
◆박 전 대표를 제외한 여권 대선주자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와 김문수 경기지사 등은 야권만큼 직격탄을 맞지는 않았다. 그러나 존재감이 미미한 현상은 더 심화됐다. 그중에서도 정 전 대표가 입은 타격이 컸다. 사재 2천500억원 출연과 자서전 출판기념회 등으로 여론의 주목을 받을 만하던 차에 안철수-박원순 회동과 박원순 단일화, 그리고 안철수 바람 등이 겹쳐지면서 관심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정치권 특히 대선주자들을 혼돈 속으로 몰아넣은 안철수 바람의 주인공인 안 원장의 대권 도전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말이 전부다. 한다, 안 한다는 직접적 이야기는 없다. 야권에서는 안철수 바람의 확산을 꾀하고 있다. 그래서 '안철수 바람'은 계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선주자들은 기존의 전략을 수정, 안철수 바람에 맞서 나갈지, 편승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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