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신이 수란한데 더위까지 극성을 부려 덩달아 안절부절 못하게 했다. 신문에 소년 두 명이 육상 트랙에서 인라인 스케이트와 킥보드 타는 장면이 나왔다. 어느날 밤 운동장에 와보니 많은 사람들이 모두들 트랙에서 타 길래 자신들도 갖고 왔다는 것이다. 온 나라가 무법천지가 되더니 이제는 애들까지 질서와 규정을 어긴다.
서울에서는 교육감 선거에서 경쟁자로 나온 후보에게 준 돈 2억원이 '우정의 부조'였다고 하는 사람이 나왔다. 뜻만 선하다면 법쯤은 어겨도 되는가보다. 오래 전에 배우 최무룡과 김지미가 이혼하면서 '사랑했기에 헤어진다'는 명언을 시작으로 "나는 일평생 거짓말은 한 번도 해 본적이 없고 약속을 어긴 일만 있다"는 김대중 씨 말 이후 오랜만에 듣게 되는 절묘한 말장난이다. 그들의 눈에는 자신의 선의를 쪼잔하게 법의 잣대로 떠드는 우리 같은 소인배들이 얼마나 가소로울까?
취한들이 파출소 와서 기물을 부시고 경찰관을 두드려 팬다. 아프다는 사람 구급차에 태워 병원으로 가던 소방관들이 죄도 없이 자칭 환자들에게 흠씬 얻어맞는다. 힘없는 사람, 못사는 사람들은 기왕에 막가는 인생이라며 법을 지키지 않고, 높은 사람들은 힘이 있다고 법을 지키지 않고, 어떤 시민단체에서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법은 악법이라며 지키지 않는다.
오늘 우리 사회는 존 스타인 백의 '바람난 버스'와 너무나 흡사한 분위기다. 얼마 전 미국의 10선(20년)의 여당 국회의원이 백악관 앞에서 불법시위를 하다 경찰관에서 붙잡혀 수갑에 묶여 잡혀가는 사진을 보았다. 지난 8월 26일 민주당 소속 루이스 구티에레즈(58) 의원이 백악관 뒤편 보도에 앉아 불법 이민자 추방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세 차례나 자리에서 일어나 이동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계속 불응하다 경찰에 연행됐다. 딴 건 몰라도 최소한 이거 하나는 미국이 멋있다.
만약에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이 시민 운동하는 사람과 청와대 앞에서 불법 시위하다 수갑에 묶여 연행됐다면 어떨까?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정권퇴진을 외치고 서울 시내는 온통 난장판이 되지 않았을까? 한국의 똑똑한 사람들은 일찍이 미국으로 유학 가서 인간의 평등사상과 법치주의 그리고 복지 등을 배워와 못난 우리들을 교육시켰다. 그러나 그들 자신은 법을 지키지 않는다. 그들은 법 위에 사람 있고 법 밑에 사람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몸소 행동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
권영재 미주병원 진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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