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벌초

벌초라는 말 참 이상한 말입디다, 글쎄 부랑무식한 제가 몇 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 큰집 조카들을 데리고 벌초를 하는데, 이 벌초라는 말이 자꾸만 벌 받는 초입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 원 참 부모님 살아계실 때 무던히 속을 썩여드리긴 했지만…… 조카들이 신식 예초기를 가져 왔지만 저는 끝까지 낫으로 벌초를 했어요, 낫으로 해야 부모님하고 좀 더 가까이 있는 느낌이 들고, 뭐 살아계실 적에는 서로 나누지 않았던 얘기도 주고받게 되고, 허리도 더 잘 굽혀지고…… 앞으로 산소가 없어지면 벌 받을 곳도 없어질 것 같네요, 벌 받는 초입이 없어지는데 더 말해 무엇 하겠어요, 안 그래요, 형님.

이홍섭

한가위 잘 보내셨나요? 올해 벌초는 어떠셨나요? 3년 전 나도 한 번, 하고 딱 한 번 예초기를 든 적 있습니다. 진위를 가릴 여지도 없이 튕겨나가는 풀들의 살점, 건드리는 곳마다 카각, 생채기를 내는 칼날의 잔혹함 그리고 그 스피디한 기계음의 공포. 아버지의 몸, 떼를 잘못 건드렸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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