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쪽배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어린 시절 적어도 수십 번씩은 불렀음 직한 노래 '푸른 하늘 은하수'는 동요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은하수에 떠있는 '반달'을 '하얀 쪽배'에 비유한 이 노래는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겨레의 설움을 대변했다. 나아가 식민지 치하의 그 어두운 터널을 헤쳐 나온 불굴의 의지를 상징하기도 했다.

그래서 쪽배는 우리에게 남다른 감흥과 정서로 다가온다. 그것은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몸을 싣고 의지한 곳이요, 온갖 시련과 맞서 싸우며 자유와 행복을 찾아 나선 최후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20년 전 40대의 프랑스인이 쪽배로 북태평양을 횡단한 사실이 외신을 타고 국내 언론에도 보도된 적이 있다. 이 프랑스인은 길이 8m의 작은 배를 타고 1991년 7월 일본 조시 항(港)을 출발해 133일간의 항해 끝에 미국 서부 해안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1만㎞가 넘는 북태평양을 노를 저어 횡단하는 신기록을 수립했다. 1980년대에도 대서양을 단독 횡단한 적이 있는 이 프랑스인은 파도에 배가 전복되더라도 손쉽게 조종할 수 있도록 특별히 고안한 초경량의 카약형 배를 이용했다고 한다. 거친 바다 위에서 폭풍우와 싸우며 북태평양을 건넜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을 탈출한 일가족 9명이 쪽배를 타고 표류하다가 동해와 인접한 일본 이시카와(石川) 현의 어느 섬 부근에서 일본 해양순시선에 발견됐다고 한다. 이들이 타고온 배는 북태평양을 횡단했던 프랑스인이 사용했던 배와 같은 크기의 목조 어선으로 위성항법시스템(GPS)이나 구명조끼도 없었다고 한다.

배 안에는 어린이 3명을 포함한 일가친척 남녀 9명이 타고 있었으며 이들은 '한국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일본 해상보안청이 밝혔다. 이들이 항해한 거리는 자그마치 770㎞에 달했다.

비록 작은 엔진이 달린 배였다고는 하나, 망망대해에서 나뭇잎 같은 쪽배 위에 아홉 사람이 몸을 싣고 기약 없는 항해를 하면서 얼마나 두려움과 절망감에 떨었을까. 그 쪽배야말로 광대무변한 우주에 떠 있는 반달, 즉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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