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의 대중가요 청소년유해매체물 판정이 있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음주와 흡연을 조장할 수 있는 가사가 담긴 곡에 대해 19금(禁) 판정이 내려지면서 가요심의에 대한 논란이 다시금 불거졌다. 19금 판정이 내려진 곡이 담긴 음반은 청소년에게 판매할 수 없고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는 방송에서도 틀 수가 없다. 사실상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고 봐도 되는 이유이다.
한국대중음악은 태생적으로 심의에 있어 자유롭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그러니까 이 땅에 가요라는 형태가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된 가요 심의는 해방 이후 왜색가요에 대한 심의가 일반적이다가 청년문화가 등장한 1970년대에는 각종 규제항목이 등장했다. 특히 1975년 정부는 긴급조치 9호를 선포하고 '공연활동 정화대책'을 발표하는데 사전심의와 금지곡은 이때 정점에 이른다. 1965년부터 1987년 몇몇 곡에 대한 해금조치가 있을 때까지 대략 837곡이 금지곡의 오명을 쓰게 된다.
이들 가운데는 웃지 못할 이유도 많았는데 알려진 것처럼 배호가 부른 '0시의 데이트'는 통행금지 시간에 데이트를 한다는 이유로 '시류착오'라는 딱지가 붙었고, 이장희가 쓰고 조영남이 부른 '불 꺼진 창'은 창에 불이 꺼져 있다고 '불신풍조 조장'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또 김추자기 부른 '거짓말이야'는 TV 무대에서 춤을 추는 동작이 북한 공작원에게 보내는 수신호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금지곡이 되었다. 가장 아이러니는 김민기의 경우다. 김민기의 모든 노래는 '이유 없음'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
1996년 정태춘을 중심으로 한 아티스트들의 노력으로 음반 사전심의가 폐지되면서 금지곡의 시대가 끝나는 줄 알았는데 이번 청소년유해매체 판정은 마치 1970년대 망령을 되살려놓은 느낌이다. 금지곡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한국대중음악계 입장에서는 솥뚜껑보고 놀랄 수밖에 없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 대중음악이 문화의 일정 요소로 자리 잡은 국가들은 자율규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학부모단체나 종교, 사회단체 등에서 모니터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매체를 선정하고 있다. 이 또한 강제성을 띠는 것이 아니라 자율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청소년 보호도 중요하지만 창작의 자유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정부가 간섭을 하고 있다. 과연 대중음악에 대해 정부의 간섭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느끼는지 묻고 싶다. 만약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여전히 1970년대를 살고 있는 셈이다.
권오성(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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