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 가족 이야기] 가문의 영광

시아버님은 6'25 전쟁 때 5년간 군 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생사를 넘나들며 화랑무공훈장 3개와 보국훈장1개를 받았고 백마고지에서 낭떠러지에 떨어져 장기간 군병원에 입원한 사실도 입증 되었지만 그야말로 골병만 들었을 뿐 신체상의 장애가 없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가 되지 못했다.

1988년 맏며느리가 되면서 보훈청에 찾아가 다시 재신청 해두고는 이사를 하는 바람에 까마득히 잊고 지내다 20년이 지나 확인을 해보니 다음 해인 1989년 유공자가 되었는데 이사 때문에 연락이 되지 않아 그동안 모르고 지냈다. 1996년 돌아가실 때까지 거의 병원에 계셨지만 아무런 혜택도 예우도 받지 못했다.

아버님의 명예를 찾아드리기 위해 두 달 동안 백방으로 뛰어 다닌 결과 돌아가신지 10년 만인 2006년 국립영천호국원에 이장해드렸다. 6'25때 전사하신 큰아버님과 함께 외롭지 않게 형제분을 나란히…. 그동안의 세월을 보상이라도 하듯, 전망이 가장 좋은 맨 앞줄에 모셨다. '이장'이라는 큰일을 앞두고 겁도 나고 걱정도 많았지만 "고생했다. 큰일을 했다."며 볼 때마다 집안어른들에게 칭찬을 받고 보니 가슴이 뿌듯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할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자부심이 대단하다. 거기다 3대가 모두 현역을 제대하는 결코 쉽지 않은 '병역이행 명문가'가 되기 위해 큰아들이 올 2월에 제대했다. 중1인 늦둥이 막내아들이 제대하는 8, 9년 후엔 진정한 '병역이행 명문가'가 될 것이다. 이 또한 진정한 가문의 영광일 것이다.

김진란(대구 북구 태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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