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 사이에서 그대가 논한 사단칠정(四端七情)의 설을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스스로 전에 말한 것이 온당하지 못함을 근심했습니다만, 그대의 논박을 듣고 나서 더욱 잘못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다음과 같이 고쳐 보았습니다. '사단(四端)의 발(發)은 순수한 이(理)만의 발인 까닭에 선(善)하지 않음이 없고, 칠정(七情)의 발은 기(氣)를 겸한 발이기 때문에 선악(善惡)이 있다.' 이처럼 하면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사단칠정논변이란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에게 보낸 이 편지로부터 역사적인 사단칠정논변(四端七情論辨)이 시작되었다. 사단칠정논변이란 쉽게 말하면 사단과 칠정이라는 마음의 두 양상을 분석하고 토론한 것이다.
사단은 맹자가 성선설의 근거로 제시한 인간의 마음속 네 가지 감정을 말한다. 즉 측은지심(惻隱之心'남의 어려움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불의를 미워하는 마음), 사양지심(辭讓之心'남에게 양보하는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을 각각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단서로 설명한 것이다.
칠정은 예기(禮記)에서 선천적으로 타고난 인간의 감정을 통칭해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慾)으로 지칭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사단칠정논변은 사단과 칠정이란 두 가지 감정을 어떤 관계로 파악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진 논쟁이다. 그것을 이기론(理氣論)으로 따져본 것이다.
그런데 사단과 칠정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당대의 두 지성이 그 방대한 주자대전 연구를 통해 쌓은 내공을 총동원, 무려 8년(1559~1566)의 세월을 투자하며 논쟁을 벌였을까. 그것은 주자학의 심성론(心性論) 때문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이상을 지향하는 실천학문인 주자학은 '인간'에 주목한다. 정치, 경제, 사회적인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과 최종적인 해결의 단서는 인간의 심성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퇴계와 고봉은 사화(士禍)라고 하는 타락한 시대 문제의 본질을 인간의 문제로 보았다.
◆세대를 초월한 대화
그런데 사단칠정논변은 시대와 인간에 대한 치열한 고뇌도 그렇지만 그 과정 또한 너무도 아름다웠다. 처음 편지를 주고받을 때 퇴계는 나이 59세로 성균관 대사성(지금의 국립서울대 총장)이었고, 고봉은 갓 과거에 합격한 33세의 청년이었다. 퇴계는 경북 안동 출신이고, 고봉은 전남 광주 사람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나이와 세대, 직위와 경륜, 그리고 지역의 한계를 모두 뛰어넘어 우리 정신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논변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극진한 예의를 갖추면서도 권위에 주눅 들지 않았던 고봉의 패기와 학문과 경륜이 원숙한 경지에 이른 퇴계의 개방적인 자세가 돋보이는 논쟁이었다.
김영두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이를 "26세의 나이'현격한 지위의 차이를 초월한 영혼의 교류"라고 평가한다. 퇴계와 고봉은 학문적인 논쟁 외에도 일상사에 관한 편지를 13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주고받으며 동시대의 학자와 관리로서의 이상과 현실을 성찰했다.
퇴계와 고봉은 열아홉 살 나이에 사화(퇴계-기묘사화, 고봉-을사사화)를 목격했고, 또한 형(퇴계)과 숙부(고봉)가 사화로 희생된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인연은 학문적 동반자 이상이었다. 퇴계는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마지막으로 선조 임금을 만났을 때 고봉을 조정의 인재로 천거했으며, 고봉은 퇴계의 묘갈명을 지었을 정도이다. 서로 믿음과 존경과 사랑으로 이루어진 관계였던 것이다.
◆논변의 쟁점
사단칠정논변은 16세기 명종 때 학자 추만 정지운이 성리학 이론을 집약한 '천명도해'가 발단이 되었다. 1553년 추만은 퇴계를 만나 이의 개정작업을 하게 되는데, 이때 퇴계는 추만이 '사단은 이(理)에서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氣)에서 발한 것이다'(四端發於理 七情發於氣)라고 한 부분을 '사단은 이(理)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氣)가 발한 것이다(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로 고쳤다.
이 같은 퇴계의 수정 부분에 고봉이 이의를 제기했고, 1558년 과거에 급제해 상경하던 고봉이 퇴계와 상면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첫 만남에서는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채 헤어졌고, 이후 편지를 주고받으며 논변이 시작된 것이다.
퇴계는 사단과 칠정을 서로 대응하는 관계로 보며, 그 존재양식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사단은 이(理)가 지배하는 영역에, 칠정은 기(氣)의 영역에 각각 분속시켰다. 사단은 마음속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본성(性)에서 나온 '순수하게 선한 감정'인 반면, 칠정은 바깥 사물이 육체를 자극하여 나오는 것으로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 일반 감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고봉은 사단과 칠정은 다 같은 감정으로 이기론(理氣論)적 논리 구조도 같다고 보는 일원론의 입장을 취했다. 사단과 칠정 역시 일종의 현상 내지는 사물이므로 이(理)와 기(氣)의 혼합체로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의 마음은 칠정으로 아우를 수 있으며 그중에 선한 부분을 사단으로 부를 뿐이라는 주장이었다. 즉 칠정은 전체의 명칭이요 사단은 부분의 명칭으로, 사단이 칠정 속에 포함되는 이른바 칠포사(七包四)의 관계로 파악했다.
퇴계는 고봉의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여 자신의 견해를 일부 수정하지만, 사단과 칠정을 나누어 보는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끝내 양보하지 않았다. 퇴계의 최종 해석은 이렇다. '사단은 이(理)가 발한 것에 기(氣)가 따른 것이고, 칠정은 기(氣)가 발한 것에 이(理)가 탄 것이다.'(四端 理發而氣隨之 七情 氣發而理乘之)
퇴계의 시대는 '사화(士禍)의 시대'였다. 인의예지를 지향하는 유학의 이상이 짓밟히고 훈구척신세력의 부정한 권력과 타락한 욕망이 기승을 부리던 난세였다. 이기론으로 말하면 기(氣)가 이(理)를 압도하던 시대로, 사단이 칠정 속에 포섭된 무기력한 구도로는 난세를 극복할 희망을 논할 수 없었다.
따라서 사단의 힘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칠정과는 다른 특별한 논리 즉 이(理)의 적극적 능동성을 인정하는 이발설(理發說)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단과 칠정을 대립적으로 보는 퇴계의 사단칠정논변은 16세기 사화의 시대에 대한 자신의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었다.
반면 고봉은 칠정을 벗어난 사단의 독립성과 이(理)의 능동성을 부정하며 이상적인 사단보다 현실적이고 경험적임 칠정을 중심으로 인간의 본질을 설명했다. 그러나 고봉은 논변의 막바지에 퇴계의 사단 중시설에 호응하는 듯한 방식으로 자신의 칠정 중심 이론의 한계를 인정한다. 마지막 서신 중에서 퇴계의 이발설에 공감을 표한 것이다.
사화의 시대 한복판을 살았던 퇴계와 달리 고봉은 훈구척신의 시대에서 사림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살았던 인물이다. 따라서 사단과 칠정을 대립적으로 보지 않고 일원적으로 보았으며, 훈척 지배의 청산과 함께 장차 도래할 사림의 시대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작용한 탓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아직은 훈척 세력이 잔존해 있는 시기였고 사림의 입장이었던 고봉으로서는 훈척 시대 극복을 위한 퇴계의 강렬한 실천적 메시지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칠정 중심 이론이 부당한 현실을 옹호하는 보수적 성격으로 읽힐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그러나 고봉의 사유는 율곡(栗谷) 이이(李珥)에 의해 계승된다. 한국사상사에 끼친 고봉의 공로에 대해 황의동 충남대 교수(철학과)는 "고봉은 퇴계와 율곡의 중간에서 양자에게 모두 영향을 미친 교량적 위치에 있었다"고 평가했다.
◆논변의 현대적 의미
사단칠정논변은 16세기 사화의 시대 즉 훈구척신이란 문제의 인간들이 발호하는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퇴계와 고봉에게 있어서는 생생한 실천적 함의를 가진 주제였다. 위기의 시대를 구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해법을 인간의 마음에 대한 성찰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이다.
퇴계 연구가인 김호태 씨는 "사단과 칠정의 문제는 시공을 초월해 21세기인 오늘에도 여전히 의미 있는 주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간의 문제는 500년 전의 그때나 지금이나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리라.
개인의 자유와 욕망과 이기심이 적나라하게 경쟁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논리에서 그 폐해와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사단칠정논변이 여전히 유용한 게 아닐까.
조향래기자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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