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라면 국물은 빨개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산 걸까? 어느 날 갑작스레 기존의 관념을 뒤집자 예전에는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맛의 신세계가 펼쳐졌다.
최근 '하얀 국물'이라는 새로운 시도로 승부수를 던진 라면들이 라면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야쿠르트가 내놓은 '꼬꼬면'은 매장에 진열되기가 무섭게 동이 날 지경이고, 삼양식품이 선보인 '나가사끼 짬뽕' 역시 입소문을 타고 빠른 속도의 상승세를 타고 있다.
◆스토리 등에 업은 꼬꼬면
최근 라면 시장의 '하얀 국물' 돌풍을 일으킨 것은 한국야쿠르트가 내놓은 '꼬꼬면'이다. 꼬꼬면은 출시 후 한 달 동안에만 900만 개가 출고되면서 하루 평균 30만 개씩 팔려나갔다. 일부 매장에서는 품귀 현상마저 빚고 있다. 대형마트 직원이 진열하려고 상자를 뜯는 순간, 소비자가 다 가져가서 진열을 할 물건이 없을 정도라는 것.
이 때문에 SNS(소셜네트워크)와 인터넷 등에서는 '꼬꼬면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아우성과 함께 '파는 곳을 알려달라'는 요청이 줄을 이을 정도다. 박호경(31) 씨는 "동네 마트와 편의점 몇 군데를 들러봤지만 꼬꼬면을 구하지 못했다"며 "결국 트위터로 물어 시내까지 나가서야 꼬꼬면을 구해 맛볼 수 있었다"고 했다.
꼬꼬면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일부 분식집에서도 발 빠르게 꼬꼬면 메뉴를 내놓기 시작했다. 그동안 분식집 라면은 대부분 신라면이 독점해 삼양라면도 진입에 실패한 시장이었다. 최근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 분식집에서도 당당히 그 이름을 내걸게 됐다.
한국야쿠르트는 "여름 시즌에 맞춰 비빔면 생산량이 많다 보니 시장 수요만큼 대응할 수가 없었다"며 "이달부터는 생산량을 70% 늘려 한 달 평균 800만 개에서 1천350만 개로 늘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꼬꼬면의 인기는 '스토리텔링'에 기반하고 있다. 개그맨 이경규가 지난 3월 KBS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 라면요리 콘테스트에 선보인 음식을 제품화한 것. 당시 심사위원으로 출연했던 최용민 한국야쿠르트 차장이 성공을 직감하고 제품화를 제의하면서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연예인 이름값에 의존한 반짝 인기'라는 냉정한 평가도 있었지만, 이제는 하얀 국물에 칼칼한 맛이 화제가 되면서 상승가도를 달리고 있다. 실제 먹어보면 기존의 빨간 국물 라면보다 담백한 국물에 청양고추가 들어가 칼칼하면서 깔끔한 맛을 자랑한다.
그럼 꼬꼬면 탄생에 지대한 기여를 한 이경규 씨가 얻는 수입은 얼마나 될까? 한국야쿠르트는 당초 올해 말까지 꼬꼬면 매출 목표를 100억원으로 잡았으나, 지금의 인기로 봐서 이달 말이면 목표치를 조기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대로라면 연 3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왕뚜껑'이나 '팔도비빔면'과 함께 회사 간판 제품으로 등극도 가능할 것이란 기대다. 개발자 이 씨는 10년간 출고가(700원 가량)의 1%대를 로열티로 받는다. 한 달에 1천만 개만 팔리더라도 1억원 안팎의 수입을 거두게 된다는 이야기다.
◆뒷심 발휘하는 나가사끼 짬뽕
삼양식품이 내놓은 '나가사끼 짬뽕'은 꼬꼬면보다 조금 더 이른 7월 말 출시됐다. 꼬꼬면처럼 떠들썩한 등장은 아니었지만 나가사끼 짬뽕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서서히 매출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나가사끼 짬뽕 역시 신개념의 '하얀 국물'을 도입했다. 삼양식품은 '나가사끼 짬뽕'이 8월 한 달 동안 약 300만 개가 팔리면서 2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밝혔다. 기존 라면이 주로 쇠고기 육수의 진한 붉은색 국물인데 반해, 해물과 야채를 풍부하게 넣고 돼지뼈를 우려낸 하얀색 국물에 청양고추를 넣어 시원하고 칼칼한 맛이 소비자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심과 소비자들의 반응은 온라인 공간으로 이어져 커뮤니티 게시판, 블로그, 트위터 등에서 꼬꼬면과 나가사끼 짬뽕이라는 2가지 하얀 국물 라면에 대한 새로운 트렌드 형성과 비교 시식 등 다양한 이야기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반응은 엇갈린다. 꼬꼬면은 아직은 익숙지 않은 전혀 새로운 맛에 조금 심심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닭고기 육수라는 새로운 국물로 깔끔한 맛을 완성했다는 평가가 줄을 잇는다.
사실 국내 라면 업계는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쇠고기 맛에만 집착해왔다. 이런 라면 시장에 닭고기 육수라는 새로운 시도는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던 것. 그렇다고 닭고기 육수가 라면 역사에 전혀 없던 일은 아니다. 세계적으로도 닭고기 맛 라면은 '스테디셀러'로 인기를 누리고 있고, 일본 닛신식품이 1958년 출시한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 역시 닭고기 맛이었다.
나가사끼 짬뽕은 칼칼한 맛이 일품이라는 평가가 줄을 잇는다. 김창진(25) 씨는 "트위터에서 워낙 입소문이 자자해 꼬꼬면과 나가사끼 짬뽕을 모두 먹어봤는데 개인적으로는 좀 더 칼칼한 맛이 나는 나가사끼 짬뽕에 한 표를 더 주고 싶다"며 "꼬꼬면은 꽤나 구하기 힘들었지만 나가사끼 짬뽕은 쉽게 구매할 수 있어 더욱 좋다"고 했다.
한편 이런 인기에 힘입어 조만간 꼬꼬면과 나가사끼 짬뽕은 컵라면 형태로도 출시될 예정이다.
◆신라면 블랙으로 체면 구긴 농심
'하얀 국물'이 뜨고 있는 가운데 라면 업계의 최강자로 군림해왔던 농심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초고가 전략으로 야심 차게 등장했던 '신라면 블랙'은 출시 4개월 만에 생산을 중단하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한 반면, '꼬꼬면'과 '나가사끼 짬뽕'을 내세운 경쟁사들은 생산라인 증설에 나서는 등 약진을 계속하고 있는 것.
농심은 지난달 30일 매출 급감으로 적자를 내고 있는 '신라면 블랙'을 이달부터 생산 중단하고 새로운 프리미엄 라면 제품 개발에 나선다고 밝혔다. 신라면 블랙은 초기에 뜨거운 반응을 보이며 출시 2개월 만에 160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기가 사그라지면서 적자를 면치 못했던 것. 신라면 블랙은 원부자재가격을 감안하면 월 매출이 60억원 이상 돼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면 업계는 내부적으로 '신라면 블랙'의 생산 중단을 예상하고 있었다. 이미 8월 초부터 신라면 블랙이 생산을 중단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던 것. 이것은 라면은 영업이익률이 5% 미만인 박리다매 상품이기 때문이다. 일정 정도 이상의 매출을 올리지 못하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곧장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것이 라면 업계의 생리.
신라면 블랙이 급격한 내리막길을 면치 못했던 것은 비싼 가격 책정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김재현(29) 씨는 "인터넷에서 신라면과 사리곰탕면을 하나씩 넣어 끓이면 신라면 블랙과 맛이 거의 흡사하다는 글을 보고 따라해 봤는데 정말 똑같더라"며 "그런데도 불구하고 가격은 1천600원으로 너무 비쌌다"고 꼬집었다.
더구나 지난 6월 공정거래위원회가 허위'과장광고 혐의를 들어 1억5천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소비자들에게 '부정적 이미지'가 각인된 영향도 한몫했다. 신라면 블랙은 '건강에 좋은 라면'을 표방했지만, 나트륨 함량이 1천950㎎이라는 사실이 알려진데다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사실까지 더해지면서 차가운 외면을 받았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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