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깜깜한 세상

'모두가 설레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도쿄. 저마다의 장소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사람들의 이브가 시작되는 그때, 주위의 모든 빛이 사라지며 도쿄는 짙은 어둠에 휩싸인다.'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영화지만 어둠이 인간에게 얼마나 공포감을 줄 수 있는지 실감 나게 보여준다. 15일 국지적인 단전이 일어났는데도 전국은 공포로 소용돌이쳤다. 현대인의 생활은 전기(電氣)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혼란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전기가 없으면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됐다. 전기가 끊길 경우 인류의 진보는 물거품이 되고 '원시 시대'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공기와 물처럼 너무 흔해서 귀한 줄 모르고 남용했기에 빚어진 일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본 미국 캘리포니아 단전 사태는 먼 나라의 일쯤으로 알아왔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인한 일본의 계획정전도 마찬가지였다. 마구 전기를 소비해 온 한국에서는 그보다 더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고 원전이나 화력발전소를 더 세울 여건도 되지 않는다. 예전처럼 '한 등 끄기 운동'을 벌이지 않는 이상 촛불 밑에 가족끼리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밤을 새워야 할지도 모른다. 전기 소비를 줄이지 않는 한 별다른 대책이 없는 것이다. 평생을 암흑 속에서 보낸 헬렌 켈러의 얘기가 생각난다. "신(神)은 문을 닫으면 창문을 열어준다." 허영과 자만심으로 가득한 인류에게 던지는 경고가 아니었을까.

박병선 동부지역본부장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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