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몸담고 있는 외과에는 매년 이맘때쯤 전공의(레지던트)들의 첫 수술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집도식'이라는 행사가 열린다. 그런데 금년이 예년과 달랐던 점은 그 수술의 종류가 '복강경을 이용한 수술'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래전에 은퇴하신 노 교수님께서는 약간은 우려가 섞인 축사를 하셨다. 지금의 의술이 무척 발전해 첨단 장비를 많이 이용하지만, 만약에 그런 장비가 없는 낙후된 국가나 지역에서 의료 활동이라도 하게 되면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를 걱정하셨다.
돌이켜보면 어느 분야나 그렇겠지만 의술도 참으로 많이 변해 왔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수술 장갑의 착용도 세계 최초가 100년 남짓 됐고, 우리나라에서 보편화된 것은 불과 50년 정도일 따름이다. 지금 원로 의사들 중에도 상당수는 젊을 때 맨손으로 수술했다고 회상한다. 내가 전공의를 하던 시절도 지금으로부터 30년이 채 안 되었지만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당시에 막 도입된 CT만 하더라도 무척 비싼 검사였기에 뇌출혈 등의 경우가 아닌데 처방하였다가는 교수님들께 꾸중을 듣기가 일쑤였다. 배 안에 고인 피는 주사기로 뽑아서 확인했고, 맹장염(충수돌기염)이나 담낭염은 환자의 배를 만져 진단했다. 환자의 증상과 모습을 토대로 꼼꼼히 만져보아서 진단을 맞추어 내는 능력으로 명의와 돌팔이가 구분지어졌다. 물론 당시에도 기본적인 피검사, 소변검사와 일반 엑스레이 검사는 했다. 그런데 요즘은 CT나 초음파로 배를 열지 않고도 속을 훤하게 들여다볼 수 있으니 100년 이상 축적됐던 과거의 진단 방법들은 아무도 중요시하지 않는다.
검사는 그렇다 치고 수술은 또 어떤가. 칼이나 가위로 자르고, 실로 꿰매고 묶고 이었던 것을 이젠 다른 기계와 기구들이 대신한다. 고주파 전기소작기와 초음파 절단기로 자르고 묶고, 호치키스 같은 티타늄 스테이플러로 창자를 이어 준다. 한 술 더 떠서 아예 로봇 팔과 손가락이 환자의 배 안에 들어가서 의사가 바깥에서 조종하는 대로 구석구석을 수술해 준다. 그러다 보니 맨손으로 눌러보고 두드려보던 진단 능력이나, 실로 꿰매고 묶던 수술법이 요즘 배우는 의사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은퇴하신 노 교수님께서 염려되어 물으신 것이다. 휴대할 수조차 없는 그런 거창한 장비들이 없는 곳에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컴퓨터가 없으면 글조차 못 쓰거나 계산기가 없으면 더하기 나누기도 아예 못할 것인가를 걱정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사실은 외과 사들을 교육하는 우리 교수들에게 던져진 것이다. 성공적으로 첫 수술을 마친 새내기 외과 의사들에게 앞으로 기쁜 보람이 늘 함께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를 갖게 도와주는 것이 나의 할 일임을 스스로 다짐해 본다.
정호영(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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