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모(61) 씨는 지난 해 견디지 못할 정도로 심한 복통 때문에 동네 의원을 찾았다. 의사는 "큰 병원에서 수술이 필요할 지 모르니 빨리 가 보라"고 했다. 급히 대학병원 응급실로 찾아간 박 씨는 혈액검사부터 X-선 촬영, 복부 CT(컴퓨터 단층촬영술) 등 검사를 받았다. 의료진은 "복강 내에서 10㎝ 정도 크기의 큰 종괴가 발견됐고, 종괴가 터져 복막염이 의심된다"며 곧바로 응급 수술에 들어갔다. 잘라낸 덩어리를 병리과에 보내 조직검사한 결과, 소장에서 발생한 '위장관 기질종양'(gastrointestinal stromal tumor·GIST)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름조차 낯선 이 병은 무엇이며, 어떤 치료를 통해 극복할 수 있을까?
◆위장관에 생기는 악성 종양
수술 후 박 씨는 종양 재발을 막기 위해 글리벡(Glivec·물질명 이매티닙)이라는 표적치료제를 10개월간 복용하고 있다. 다행히 최근까지 재발이나 특별한 증상없이 잘 지내고 있다. 소장은 위나 대장과 달리 암이 잘 발생하지도 않으며, 혹시 암이 생겨도 진단이 무척 까다롭다. 박 씨는 그만큼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아울러 표적치료제 덕분에 예후도 좋다.
박 씨가 진단받은 '위장관 기질 종양'은 복강 내에 있는 위장관(위와 장을 포함한 소화기관), 창자간막(위와 창자를 배 벽에 고정하는 복막) 또는 그물막(복강 안쪽 내장 사이를 커튼 모양으로 연결하는 막)에서 발생하는 종양이다.
인구 100만 명당 5~15명 정도의 환자가 발생하는 비교적 드문 종양. 하지만 위장관에서 발생하는 육종 중 가장 흔하며 모든 육종의 5%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암, 즉 악성종양은 암종과 육종으로 나뉜다. 암종은 상피조직(표피, 피부, 점막, 소화기계, 비뇨기계)에 생긴 것을 말하고, 육종은 비상피성조직(근육, 뼈, 혈액)에 생긴 것을 뜻한다. 쉽게 말해 위 점막(벽)에 암이 생기면 위암이지만 위 벽 안쪽에 있는 근육층에 악성종양이 생기면 '위장관 기질종양'이다.
일반적으로 조기에 발견돼 완전 절제 수술을 받으면 완치도 가능하다. 그러나 재발하거나 진단 당시에 전이돼 절제가 불가능한 경우, 기존의 세포독성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에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예후가 무척 나빴다.
다행히 최근 위장관 기질종양의 발생기전이 밝혀지고 있고, 이를 차단할 수 있는 표적치료제인 글리벡이 상용화돼 많은 환자들에게 사용되고 있다. 치료 성적도 점차 나아지고 있다. 종전에 2년 생존율은 20~30%에 불과했지만 글리벡 사용 이후 80% 이상으로 높아졌다. 참고로 '기적의 항암제'라고도 불리는 글리벡이라는 표적치료제는 원래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를 위한 치료제로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위장관 기질종양에도 탁월한 효과를 보여 표준치료제로 정립된 약물이다.
◆급성 또는 만성 위장관 출혈 생겨
위장관 운동을 조율하는 '카잘 간질세포'라는 것이 있다. 위장관 기질종양은 대부분(90~95%) 카잘 간질세포에 있는 'KIT 유전자'(세포막 단백질)의 돌연변이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세포는 외부 신호에 의해 자라고 죽는 것이 조절된다. 그런데 세포 표면에 있는 KIT 단백질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외부 신호 없이도 세포가 계속 자라게 한다.
50% 이상은 위에서 발생하며, 소장은 약 35%, 결장·직장은 5% 이하이다. 종양의 크기는 1㎝ 미만부터 40㎝ 이상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평균 크기는 약 5㎝ 정도. 50세 이상 성인에서 더 흔하며, 남성의 경우 예후가 더 좋지 않다.
흔히 급성이나 만성 위장관 출혈이 발생할 수 있다. 때문에 빈혈 증상을 보일 수도 있다. 아울러 조기 포만감, 피로, 복강 내 출혈, 복강 내 파열과 괴사, 복통, 부종 등을 호소할 수 있다. 이런 증상이 있다면 혈액검사, 내시경, 복부CT 등의 검사가 필요하다. 조직검사도 필요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완전 절제가 가능하다면 수술 전 조직검사는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조직검사를 통해 확진이 됐고, 영상검사에서 잘라낼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며 전이가 없다면 완전 절제를 목표로 수술을 하게 된다.
문제는 수술로 완전 절제를 해도 2년간 환자의 30~40%가 재발을 경험한다는 것. 특히 종양 크기가 클수록, 조직검사상 세포 분열수가 많을수록, 천공이나 파열이 있는 경우, 위가 아니라 소장에서 생긴 경우에 예후가 나쁘고 재발이 많다.
재발률을 낮추기 위해 글리벡을 사용한다. 글리벡은 'KIT 유전자' 등을 억제해 재발과 전이를 막는다. 수술 후 글리벡 복용 기간에 대해 논란도 있고 연구도 진행 중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년간 복용한 뒤 중단하고 관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구지역서도 치료 연구 활발
만약 처음 진단할 때부터 전이가 있어서 절제가 불가능하거나, 다시 종양이 재발한 경우 글리벡을 복용해야 한다. 400㎎을 하루에 한 번 먹는 것이 표준용량. 악화를 막기 위해 꾸준히 규칙적으로 복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 지나친 부작용이 계속된다면 용량을 줄이거나 일시 중지하기도 한다. 주된 부작용은 부종, 체중 증가나 감소, 피부 발진, 건선, 근육통, 관절통, 탈모, 구토, 속쓰림, 두통, 피부 하얘짐 등이 있다. 아울러 치료 과정 내내 종양 반응을 CT로 면밀히 관찰하고 모니터링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반응이 좋아 암 크기가 줄어들면 절제 수술이 가능할 수도 있다. 또 글리벡 복용 중 종양이 악화됐다면 용량을 최대 800㎎까지 늘리는 것이 표준 대처법이며, '수텐'이라는 다른 표적치료제를 쓸 수도 있다.
위장관 기질종양은 최근 들어 종양의 한 질환으로 분류됐고, 발생기전도 밝혀지고 있다. 비교적 드문 종양인 탓에 진단과 치료의 표준화가 정립된 시점이 얼마 되지 않았다. 때문에 환자는 물론 의료진에게도 치료에 있어 생소한 질환.
경북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강병욱 교수는 "위장관 기질 종양은 글리벡과 수텐과 같은 표적치료제의 도입에서 보듯이 앞으로 의료진과 환자의 노력으로 완치 가능한 질환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며 "대구지역에서도 위장관 기질종양 완치를 위한 여러 방법을 찾기 위해 뜻을 같이 하는 병리학자, 외과의, 내과의가 모여 대구 위장관 기질종양 연구회를 결성했다"고 말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도움말 = 경북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강병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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