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두개골 최소한 절개 뇌혈관 수술 '새 장'

병 속에 범선넣듯 절개 최소화…고통 적고 회복 빠르게

좁고 긴 목을 가진 투명한 병 속에 놓인 범선. 커다란 돛을 펼친 범선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의문을 갖게 된다. 어떻게 병 속에 범선을 넣었을까? 병 바닥을 자른 뒤 범선을 넣고 잘린 부분을 이어 붙이면 쉽게 가능할 듯하다. 하지만 어디에도 이음새는 없다. 해답은 가는 실로 이은 범선 조각들을 하나씩 집어넣고 두 개의 긴 막대로 조립하는 것. 작은 절개를 통해 큰 수술을 시행하는 것은 최근 외과계에서 일고 있는 시대적인 조류이다.

최소한의 절개를 이용한 수술은 이후 겪게 되는 고통과 일상으로 돌아가는 회복기간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이점을 갖고 있다. 신경외과의 뇌혈관수술 분야에도 이러한 변화가 일고 있다. 경북대병원 신경외과 박재찬 교수는 '병 속에 범선 넣기'와 같은 수술을 하고 있다.

◆눈썹 부위 두개골 2㎝ 절개 뇌혈관 수술

박 교수의 수술기법은 대표적 뇌혈관 질환인 뇌동맥류 치료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뇌동맥류'는 뇌혈관이 갈라지는 이음새 부위가 약해져 지속적인 혈류(피흐름)를 지탱하지 못하고 풍선처럼 부푼 상태. 혈관이 터지지 않아서 뇌출혈을 일으키지 않고 있는 상태를 특히 '비파열 뇌동맥류'라고 한다. 뇌동맥류는 터질 경우 사망률이 30~50%에 이르는 치명적 질환이다.

파열 전에 진단되는 경우 적절한 치료를 해야 한다. 환자의 나이와 뇌동맥류 크기, 형태 및 위치를 고려해 치료법을 택한다. 크게 머리를 여는 개두수술과 혈관에 가는 관을 집어넣는 혈관 내 수술로 나뉜다. 개두수술은 말 그대로 두개골을 절개한 후 동맥류를 티타늄 클립(Titanium clip)으로 묶어두는 것. 혈관 내 수술은 허벅지 동맥을 통해 카테터(Catheter)라는 긴 관을 뇌혈관까지 집어넣은 뒤 뇌동맥류 부위를 가는 백금 코일로 채우는 것. 특성에 따라 개두수술이나 혈관 내 치료를 선택한다.

개두수술을 할 경우, 대표적 방법이 '테리온(Pterion) 수술법'이다. 머리를 깎은 뒤 20㎝ 정도 두피를 자르고, 머리 옆 측두근과 손바닥 크기 정도의 두개골을 잘라내는 과정을 거친 뒤 뇌혈관 수술이 진행된다. 마치 사람이 지나가기 위해 큰 남대문을 여는 격이다. 이에 비해 박 교수는 눈썹절개를 통해 뇌동맥류를 수술한다. 눈썹을 깎지는 않으며 눈썹 부위의 피부를 3.5㎝ 길이로 절개한 뒤 지름 2㎝ 정도만 두개골을 열어 수술을 한다. 이곳이 바로 범선이 들어가는 병 목에 해당하는 셈이다.

눈썹절개를 통한 뇌수술은 약 15년 전 지금은 고인이 된 독일의 페르네츠키(Perneczky) 교수가 고안한 것. 박 교수는 2005년부터 비파열 뇌동맥류에 눈썹절개 수술을 적용해 지금껏 200례 이상에서 성공적인 수술을 시행해 왔다. 현재 이 수술법은 비파열 뇌동맥류에 대한 경북대병원의 표준 수술법으로 자리매김하면서 해마다 50례 이상 시행되고 있다.

◆양대 학술지에 잇따라 실리기도

박 교수는 그간 눈썹절개 수술법을 향상시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작은 수술 부위에서 발생하는 출혈을 효율적으로 막기 위해 새로운 수술기법을 고안했으며, 2009년 국제논문지에 발표했다. 또한 두개골을 지름 2㎝ 정도로 잘라낸 뒤 수술이 완료되면 두개골을 복원하게 되는데, 이때 복원된 두개골 틈을 따라 좁지만 깊은 결손부가 생긴다. 결국 피부도 따라서 함몰돼 보기 흉한 자국이 남게 된다. 박 교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생체 적합 보형물 중 하나인 '메드포'(Medpor)를 생산하는 미국의 포렉스(Porex)사와 함께 자신이 디자인한 보형물을 생산, 상품화했다. 덕분에 흠 없는 두개골 수술이 가능해졌다.

올해 박 교수의 눈썹절개를 이용한 뇌동맥류 수술이 신경외과 분야에 있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양대 권위지인 '뉴로서저리'(Neurosurgery)와 '저널 오브 뉴로서저리'(Journal of Neurosurgery)에 잇따라 발표되는 쾌거를 이뤘다. 6월 '뉴로서저리'에는 눈썹절개 수술의 적응증과 우수한 수술 성적을 발표했으며, 오는 10월 '저널 오브 뉴로서저리'에는 동안신경(안구의 운동이나 동공의 움직임을 지배하는 뇌신경)에 영향을 미친 뇌동맥류에 대한 눈썹절개 수술 경험을 발표한다.

특히 10월호에는 논문의 내용 사진이 표지를 장식하게 된다. 박 교수는 뇌혈관이 막힌 급성 뇌경색 환자에게 짧은 시간에 혈전을 제거하는 눈썹절개 수술법을 고안해 2009년 '뉴로서저리'에 발표한 바 있다. 박 교수는 "앞으로 다른 질환에도 눈썹절개 수술을 적용하도록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며 "뇌혈관 수술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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