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별물

너 때문에 목이 말라서 마실 물 한 잔을 따랐는데, 그릇 안에 별 모양 같은 게 떠서 어른거린다. 무슨 수로도 건져내지 못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다.

마른 목 속으로 천천히 별 물을 들이켜고 말았다. 그때부터 손바닥에도, 손바닥이 스치는 뺨 위에도, 틈만 나면 묻어나오던 별의 기척을 어쩌나. 너 든 가슴은 또 어쩌나.

정윤천

 

 '너'라는 단어, '너'라는 의미 앞에서는 늘 목이 마르다. 왜냐하면 너는 영원히 '나'가 아니라 '너'이기 때문이다. 너는 언제나 내 앞의 가장 가까운 빈 자리이고 오지 않는 약속이고 실행할 수 없는 키스이다. 그래서 신비 아니겠는가. 그래서 로망 아니겠는가.

너는 영원히 눈에 밟히는 여운, 귀에 쟁쟁한 환청. "지혜로운 노인은 샘물을 다 퍼오지 않는다"지. 너는 다 퍼내지 않은 샘물이다. 남겨두는 미지이다. 뼈아픈 갈증이다.

그래서 별로 떠 있는 것이지. 만질 수 없는 별이지. 자나 깨나 어른거리 는 별, 나는 너를 건져내지도 못한다. 마른 목으로 차라리 꿀꺽 삼키리. 움직일 때마다 그 별들 부딪혀 신음소리를 내더라도 '별의 기척'이라고 착하게 말하자. 이런 방식으로라도 함께 하려는 몸짓을 보라. 그러니 이 땅의 수많은 '너'여, 그렇게라도 가지 마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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