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참군인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 국민들의 가슴속에 참다운 군인으로 남아있는 인물은 몇이나 될까. 전쟁과 독재, 그리고 혁명과 쿠데타에 이어 오랜 군사정권 시대를 거쳐야 했던 현대사의 격랑에서 '참군인'으로 살기란 참으로 지난한 일이었을 것이다.

'참군인'의 삶이란 여러 가지 명제를 충족시켜야 하겠지만, 우선 '군의 정치적인 중립'이 전제되어야 할 것 같다. 이를 평생의 철학으로 간직하고 몸소 실천한 군인으로, 먼저 이종찬 장군을 떠올려본다.

6'25전쟁 중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된 이종찬 장군은 군납 비리를 시정하고 공정한 군 인사를 추진했다. 심지어 사촌 동생을 중령 진급에서 배제할 정도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집권 연장을 위한 부산정치파동을 일으키고 군병력 파견을 지시하자 이를 거부했다.

그를 보좌하던 군 참모들이 어지러운 정국 타개를 명분으로 쿠데타의 지도자로 추대하려 했지만 이 또한 단호히 뿌리쳤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유신정권 때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군인의 길만을 걷지 못한 것을 늘 후회했으며, 1980년 출범한 5공 정권의 반역사성을 비판하기도 했다.

백골부대 창설의 주역이었던 한신 장군은 6'25전쟁 영웅이다. 휴전 뒤에도 사단장, 군단장, 군사령관, 합참의장을 역임하면서 오로지 강군 육성에 진력했다. 이종찬과 달리 5'16 군사정부에 동참했지만 공직사회 기강 쇄신과 부정부패 척결에 앞장섰던 그의 행적까지 폄하할 수는 없다. 한신은 청렴결백한 군인의 표본으로 숱한 일화를 역사에 남겼다. 한신 장군의 군사령관 시절 참모장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장태완 장군 또한 신군부의 12'12 쿠데타에 정면으로 맞서며 충직한 군인으로 이름이 오르내렸다.

20일 별세한 이춘구 전 민자당 대표는 정치인이기 이전에 군인이었다. 육사 14기로 준장 시절 군복을 벗은 그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 신군부의 광주포병학교 병력 동원을 온몸으로 막았다. 6공 정부의 내무장관 재직 시절, 사업에 어려움을 겪던 친동생이 자살한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94년 국회 부의장으로 물러날 때 남은 판공비를 반납했다. 이듬해 정계를 떠나면서 후원회에서 모금해 준 돈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정치군인들이 득세하며 국정을 농락해 온 우리 현대사를 되돌아볼 때 몇몇 군인들의 소신 있는 삶은 그나마 돋보일 수밖에 없다.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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