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채널] 대한제국애국가는 왜 금지곡 되었을까

KBS1 '역사스페셜' 22일 오후 10시

우리나라에서 작곡된 최초의 근대음악이자 '국가'란 이름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음악 '대한제국애국가'. 탄생한 지 7년 만에 '금지곡'이 되어버린 노래, 가사도 멜로디도 철저하게 잊혀져버린 비운의 곡 '대한제국 애국가'는 왜 불리지 못했던 것일까. KBS1 TV '역사스페셜-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는 금지곡이었다'편이 22일 오후 10시 방송된다.

독립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는 '대한제국애국가 악보', 금박과 청홍색의 실끈으로 장식된 호화로운 겉장을 넘기면 피콜로, 오보에, 클라리넷 등 18가지의 악기가 사용된 '대한제국 애국가' 악보가 펼쳐진다. 110년 전 우리나라에서 작곡된 최초의 서양음악. 대한제국 애국가는 황제를 보위하던 당대 최고 석학들이 작사에 참여했고 파격적인 조건으로 초빙해온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가 작곡했다.

1901년 한국에 초빙된 독일인 왕실악장 '프란츠 에케르트', 쌀 한가마니가 5~6원하던 시절 그의 월급은 3백 원. 에케르트는 단순한 군악대장이 아닌 애국가 제정이라는 중차대한 임무가 주어졌고 그에 따라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특급대우를 받았다. 1901년 3월, 에케르트는 본격적으로 군악대원을 선발한다. 그리고 4개월 후, 애초에 뽑았던 50명 중 27명이 신식복장과 악기를 갖춘 정규 '군악대'가 된다. 이들의 데뷔는 1901년 9월 7일 고종황제의 만수성절에 성공적인 데뷔를 치른다.

19세기 중엽 조선 사회는 격변하는 세계정세 속에 일대 전환기를 맞이한다. 세계 여러 나라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국가 상징물 즉, '애국가'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졌다. 1902년 마침내 애국가를 완성한 대한제국은 국기와 애국가를 가지고 근대국가로서 당당히 세계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한일의정서 체결 이후, 사실상 고종의 근대화 프로젝트는 막을 내린다. 일본은 대한제국의 근대화작업을 중지시키고 그 성과를 자신들의 것으로 왜곡하기 시작한다. 대한제국 근대화의 상징이자 성과물이었던 대한제국애국가도 불리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대한제국 애국가는 국내해산 이후 강등조치 되고 공식적인 채널들을 통해 애국가 금지가 보도 된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이 있기 전의 일이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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