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상계의 살아있는 지성으로 추앙받는 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의 '어린이 책을 읽는다'를 읽었다. 저자는 아이들이 언어라는 표현 수단을 포기하고 '문제 행동'이라는 표현 수단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어린이 문학의 존재 의의를 찾는다. '어린이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어린이 문학의 과제이다. 이 과제는 어른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고, 어린이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그 사이의 갈등을 극복함으로써 달성된다'고 말하는 저자는 어린이를 위해서 어른이 쓴 책이 아니라, 어린이의 눈빛을 잃지 않은 어른이 쓴 책이야말로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의미 있는 책이라고 말한다.
그가 소개하는 어린이 책 속 세계로 떠나보자.
런던의 주택가에 사는 소년 벤은 다섯 형제 가운데 셋째인데, 생일선물로 할아버지에게 살아있는 강아지를 선물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보낸 선물은 진짜 개가 아니라 작은 개를 털실로 수놓은 액자였다. 형제가 많은 집안에서 자라면서도 소외감을 느끼는 벤은 생일날 더 큰 고독감을 맛본다. 이것은 소년이 성장을 위해서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작은 개 치키티토를 거부했지만, 나중에는 너무나 사랑하게 된 벤의 마음속에는 '보이지 않는 개'가 살게 되었다. 결국 벤은 지나치게 내부 세계로 치우친 나머지 외부 세계와의 커다란 충돌인 교통사고를 경험해야 했다. 이 과정을 통해 벤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환상의 개는 소년의 마음속에 완전히 내재화되어 소년이 한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필리파 피어스의 '아주 작은 개 치키티토'는 인간에게 환상(판타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에리히 캐스트너의 '하늘을 나는 교실'에 대해서는 인생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춘기 전기 사내아이들을 묘사한 작품 중 백미로 꼽는다. 책 속에는 스스로도 까닭을 모른 채 행동하기 때문에 위험한 시기를 보내는 그 시기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로서 유스투스 선생님이 등장한다. 유스투스 선생님은 학생들이 마음이 괴로울 때면 모든 걸 다 얘기할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사감 선생님이 되었다. 그러나 주인공인 다섯 소년은 아무리 믿는 선생님한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을 때면 금연 객차에서 홀로 지내는 니히트라우허 아저씨를 찾아간다. 사춘기 아이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도자가 필요하며, 유스투스 선생님과 니히트라우허 아저씨, 둘 다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전 세계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내 이름은 삐삐롱스타킹'에 대한 해석도 흥미롭다. 삐삐는 아홉 살짜리 여자 아이로 오래된 정원이 딸린 낡은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홍당무처럼 빨간 삐삐의 머리카락은 두 갈래로 땋아 옆으로 쫙 뻗어 있고, 감자같이 생긴 조그만 코는 주근깨투성이다. 삐삐는 자신의 엄마가 하늘나라에 있고, 아빠는 식인종의 왕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고아이지만,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어른의 지배와 간섭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부모님의 신뢰와 보호 속에서 살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삐삐는 닐슨 씨라는 작은 원숭이와 함께 살고 있으며 금화가 가득 든 가방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놀라운 힘까지 지니고 있다. 학교에도 다니지 않는 삐삐의 생각과 행동은 자유롭고 창조적이다.
삐삐의 자유는 강렬한 역전의 사상을 지니고 있으며 기존의 질서를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일격을 가한다. 어른들 눈에 삐삐의 행동은 완전히 구제불능이지만, 삐삐는 스스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행동하기 때문에 행복하다. 그런 삐삐에게 아이들이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림책의 힘' '나쁜 아이가 세상을 바꿨어요'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 등의 저자이기도 한 가와이 하야오와 함께 어린이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t신남희(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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