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필자가 속해있는 단체가 주관한 세미나에서 한 평론가를 초대해 현대미술에 대한 발제를 맡겼다. 발제방식이 일반적인 강연이 아니라 작품사진을 한 장씩 영상으로 띄워놓고 관객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답하는 방식이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이 늦어지면 미술을 전공한 게 맞냐고 면박을 주기 일쑤였다. 대구에 오랜만에 왔다는 그는 박현기 선생을 기억하며 80년대까지 대구가 현대미술을 이끌던 도시였다고 말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며 미술계도 침체를 거듭하다 서울과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우리단체의 전시회를 보고 난 뒤에도 작품들이 후지다느니, 세미나의 주제를 회원 작품들로 자주 해서 회원들이 자극을 받아 공부를 더 해야 하며 좋은 단체를 만들기 위해선 거기에 따라주지 않는 회원을 과감히 제명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쓴소리들을 쏟아내었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을까 기분 나빠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느 선배작가가 전에도 이 평론가와 술자리에서 논쟁이 붙어 식탁이 몇 번 뒤집혔다고 말해 주었다.
사실 쓴소리는 쉬워 보이지만 칭찬보다 어렵다. 쓴소리를 하려면 타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선 충분한 사전 지식이 필요하며 지식이 충분치 않으면 건설적 비판이 아닌 비난이 될 것이다. 요즘엔 뒷말하는 사람들이 많지 진정한 쓴소리꾼이 없다. 자칫 잘못하면 남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는 얘기가 될 것이고 적을 만들어서 좋을 것이 없다. 그리고 자신의 비판적인 주장도 되도록 누군가의 입을 통해 나오길 기대하지 악역을 자처하는 사람은 없다.
요사이 유행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쓴소리를 퍼붓는 심사위원들이 참가자만큼이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노래를 하기 원하는 개인적 사연이 절절한 일반인을 상대로 한 심사위원의 거침없는 독설에 당사자는 눈물을 흘리며 당혹스러워 한다. 그래서 일부 시청자들에게 욕도 많이 먹고 있지만 동시에 수많은 시청자의 관심을 받고 있다. 처음 방송에 나오면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과 같은 상태이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심사위원들의 쓴소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아름다운 보석이 되는 과정에 시청자들은 열광하는 것이다. 이런 쓴소리는 분명 독보다는 약이 되기 마련이다. 그 모진 역할을 자청한 한 심사위원은 '독설도 애정이 있어야 나온다' 고 했다.
세미나의 발제를 맡은 그 평론가도 욕을 먹어 가면서까지 계속 쓴소리를 했던 것은 그만큼 대구 예술계에 대한 애정이 컸기 때문이리라.
더 많은 비평가와 예술인들이 날카로운 시각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무장하여 패거리주의, 상업주의와 결합해 예술의 본질을 잊은 예술가들, 그리고 탁상공론에 그치고 사회를 살찌우지 못하는 문화행정의 면면을 향한 애정 어린 쓴소리로 현실에 안주하여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 문화 예술계가 달라지길 기대해 본다.
정세용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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