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로 직원들의 화합을 다지고 건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삶에 필요한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셈이지요."
커튼'블라인드 생산업체 한솔IMB 조상인(41'대구 서구 이현동) 대표의 야구 예찬론이다. 조 대표는 직원들의 단합을 도모하고 건강을 지키는 묘안을 찾다 지난해 9월 야구단을 창단했다. 최고 연장자가 40대 초반일 정도로 회사 직원들이 젊은 점을 감안하고, 패기 있는 직장문화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야구는 타석에선 투수의 마음을 읽어야 하고, 수비를 할 땐 최대한 협동심을 발휘해야 하니 직원들을 단합시키고, 끈끈한 직장애도 갖게 하는 최고의 운동으로 여겨졌습니다."
4년 전 이 회사 일부 직원들은 야구단 창단에 나섰다. 그러나 최대한 끌어 모은 단원이 7명밖에 되지 않았다. 정규 시합을 하지 못한 채 연습만 하다 보니 흥미가 떨어졌다. 일부가 학연'지연'인연의 끈을 찾아 다른 팀에 입단하면서 야구단은 창단의 빛을 보지 못했다.
지난해 가을 다시 일부 직원들이 야구단 창단 바람을 지폈다. 이번에는 조 대표가 직접 나섰다. 직장 내 동료끼리 뜻을 맞춰 하는 동아리가 아닌 회사의 이름을 유니폼에 새긴 정식 구단으로서의 창단이었다. 당시 회사 복도에는 대표 명의의 야구단원 모집 공고가 붙었다. 너도나도 지원서를 내 금세 19명이 모였다.
50여 명의 직원 중 남자가 38명, 이 중 19명이 야구단원이니 남자 절반이 야구단에 속했다. 특히 부산지사 직원 13명 중 6명도 가입했다. 이들은 매번 시합이 열린 때면 휴일을 반납하고 대구와 부산을 오가며 야구단에 힘을 불어넣고 있다.
'한솔브라인드'로 야구단 이름을 짓고, 조 대표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유니폼, 사회인야구리그 가입비, 배트 등 팀 공동장비를 구입하고 나니 그럴듯한 야구단 모습이 갖춰졌다.
그러나 다듬어지지 않은 실력은 형편없었다. '예전에 나무배트로 홈런을 쳤고, 구속이 120㎞에 이른다'고 큰소리쳤던 무용담은 첫 연습부터 여지없이 거짓말로 드러났다. 공을 제대로 던지지도 받지도 못하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한 선수는 자기가 오른손잡이인데 왜 왼손에 끼는 글러브를 주느냐고 따지는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졌다.
사회인야구 정규리그에서 수모를 당하지 않으려면 실력을 향상시키는 방법밖엔 없었다. 겨우내 학교 운동장을 빌리고, 자그마한 공터만 있으면 야구단원들을 불러 모아 혹독한 훈련에 매달렸다. 회사 대표가 한 번도 빠지지 않으니, 싫든 좋든 직원들로서는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어긋난 단추가 제 구멍에 찾아가듯 연습이 계속되면서 실력도 차츰 늘기 시작했다. 반강제적 훈련도 차츰 흥미가 생겼다.
올해 첫 정식경기(4월 3일)를 앞두고 조 대표는 "매 경기 최고 활약 선수에게는 배팅, 장갑 등 야구용품을 선물로 주겠다"며 사기를 진작시켰다.
신생팀끼리 맞붙은 첫 경기. 한솔브라인드는 믿기 힘들만큼 열정을 보이며 첫 출전에서 첫 승리를 따냈다. 당연히 밤늦도록 축배가 이어졌다. 김원석(42) 이사는 "술과 밥이 어우러진 축하연은 5시간 동안 이어졌고, 야구이야기 외에는 일체 다른 이야기가 없을 정도로 기쁨을 만끽했다"고 말했다.
어느덧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며 거둔 성적은 5승5패. 그러나 야구를 하면서 회사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내근과 외근(영업), 생산부서로 나뉘어 서로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았던 직원들이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야구장에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말할 기회도 많아졌고, 서로 고충을 이해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조 대표는 "서로 다른 업무를 하는 직원들이 야구로 동질감을 느끼게 됐고 한 식구라는 생각을 더욱 많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야구단원이 아닌 여직원들과 남자직원들은 자발적으로 경기장을 찾아 응원으로 활기를 불어넣었다. 조 대표의 부인 이정화(39) 씨는 아예 야구단 단장에 이름을 올리며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 경기가 있을 땐 먹을거리를 사들고 경기장을 찾아 열혈 응원을 펼치는 것도 그의 임무. 이 씨는 "어릴 적부터 야구를 좋아했고, 남편을 비롯해 직원들이 야구를 하니 멋져 보였다. 그래서 야구시합이 있는 날에는 6, 7세 된 아이 둘을 맡겨두고 야구장을 찾는다"고 말했다.
경기 뒤에는 어김없이 뒤풀이가 마련된다. 이 자리서 회사 발전을 위한 생생한 아이디어도 나와 조 대표를 기쁘게 했다.
조 대표는 "올 4월 회사 야유회를 아예 야구경기를 할 수 있는 남해 스포츠파크로 정해 야구도 하고 화목도 다지는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야구가 가져다준 혜택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직원들의 건강증진에도 일등공신이 역할을 했다. 한여름 나무 그늘이 없는 땡볕에서 야구를 하려면 기초체력은 기본. 강해진 체력과 더위를 이겨내며 길러진 정신력은 고스란히 업무로 이어졌다.
회사는 매출이 증대해 올 12월 인근에 제2공장을 짓기로 했다. 조 대표는 992㎡ 남짓한 그곳 옥상에 야구연습을 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키로 직원들에게 약속했다.
"야구는 치고 던지고 받는 모든 순간이 긴장감의 포인트가 됩니다. 경기를 하다 보면 자기 앞으로 공이 한 번도 오지 않을 수 있고 타석에선 삼진만 먹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경기에 나서려면 땀을 흘리며 준비해야죠. 그런 준비 끝에 실제 경기에서 볼 하나를 잡아냈을 때, 안타를 쳤을 때의 희열은 정말 끝내줍니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죠."
집에서는 건강한 남편과 아빠, 회사에서는 열정을 불사르는 직장인이 되는 한솔브라인드 야구부원들은 이제는 홈런을 꿈꾸고, 멋진 플레이 설렘에 밤잠을 설친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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